보르헤스의 삶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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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1899년8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부유한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전통적으로 서구적인 교양교육을 중시하는 가풍 탓에 그는 모국어인 스페인어보다 영어를 먼저 배우면서 성장했다. 제3세계 출신의 작가로서는 드물게 그의 소설이 보편 지향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것도 이러한 서구적 교육배경에 기인한다. 일찍부터 인생의 방향을 글쓰기로 정해버린 이「책벌레」는 15세에 유럽으로 건너가 스위스 제네바에 정착하면서 영문학 뿐 아니라 불문학·독문학 등 서구문학 전반을 미친 듯이 섭렵한다. 21세 때 다시 고국아르헨티나로 돌아온 그는 당시 스페인문학계를 풍미하던 울트라이스모라는 전위주의 문학운동에 참여한다. 30대 이후에는 국립도서관의 사서로 근무하면서 꾸준히 시·소설을 발표한 그는 40년대에는 짤막하지만 철학적 깊이를 자랑하는 우화적인 소설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명성을 떨쳤다.
1951년 그의『허구들』이 프랑스어로 번역되면서 그의 독특한 문학세계는 점차 서구문학계의 눈길을 끌게된다. 그의 국제적인 명성은 영역판 선집인『미궁』이 1961년 발표되면서 절정에 이른다. 50년대에는 반페론 운동에 참여했다가 정부의 미움을 사 보건소 직원으로 좌천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86년 실명상태에도 불구하고 글쓰기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였던 이 노대가는 그의「정신의 고향」인 제네바에서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보르헤스의 국내 소개는 70년대 후반 몇몇 세계문학전집에서 일부 작품이 번역된 것이 최초였다. 지난해에는 드디어 두권의 단행본이 번역됐다.『허구들』과『바벨의 도서관』이 그것인데, 특히 『허구들』은 풍부한 역자주를 달아 보르헤스에의 접근을 용이하게 한 책으로 평가된다. <임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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