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버지와 좋은 남편|강우현(그림동화작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5면

얼마전의 일이다.
내가 좋은 아버지 모임에 관계하는 것을 알고 아내가 내게 물었다.
『좋은 아버지도 좋지만 좋은 남편이 되려는 사람들의 모임을 한번 만들어보지 그래요?』
나는 아주 간단하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자신이 없어.』
아내는 왜 자신이 없느냐고 반문했지만 실제로 나는 자신이 없었다.
부부사이는 수평관계니까 사랑의 표현도 수평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부간의 사랑이 수평적이라면 부자간의 사랑은 역시 내리사랑인 것 같다.
모든 부모가 다 그렇겠지만 마냥 사랑하고 아껴주고 싶을 뿐 반대급부에 대한 바람은 없다.
아들 녀석을 다음엔 어떤 일로 놀래줄까 하는 장난기 어린 생각으로 머리가 꽉 차 있을 때도 있다. 바깥일에 지쳐 힘이 들 때 아이에게서 걸려온 전화는 청량제가 된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마음으로 받을 수 있으니까.
따르릉….
『아빠, 저 오늘 학교에서 친구들끼리 모임을 하나 만들었는데요… 우리 반 친구 열두 명이 모여 쓰레기도 줍고 학교에 건의할 것도 해보려고요.』
『무슨 모임인데?』궁금해서 물었다.
『저, 착한 어린이가 되려는 아이들의 모임이라고 하는….』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우하하하』하고 모처럼 너털웃음을 웃을 수 있었다.
나중에 안 이야기지만 이 녀석이 내가 만든 재생공책을 나누어주면서 내 흉내를 내 본 모양이다.
전에도 그랬지만 최근에도 이런 질문을 가끔 받는다.
『당신은 좋은 아버지니까 좋은 남편이기도 하겠군요.』하지만 나는 아직도 새로운 답변을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
『그게 좀 다른 모양입니다. 나는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허허.』
좋은 아버지와 좋은 남편, 언뜻 생각해보면 개념은 비슷한데 양립하기가 어쩐지 쑥스러운(?)단어다.
하지만 이 두가지 쑥스러운 모순을 잘 조화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