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강은섭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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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헐렁한 T셔츠에 무릎까지 내려오는 긴 조끼차림을 한 요즘 젊은이들을 보면 먼저 부럽다는 생각이 들어요.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편안한 옷들을 마음껏 사 입을 수 있으니까요. 우리가 젊었을 때는 이런 옷들을 입고싶어도 기성복이 나와있지 않았죠. 그래서 하룻밤을 꼬박 새워 옷을 직접 만들어 입기도 했답니다.』
50이 넘은 지금도 10∼20대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캐주얼웨어 매장을 찾아 옷을 고르는 멋쟁이 강은섭씨의 얘기다. 「시스템」「타임」「텔레그라프」등 젊은 층에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는「최첨단 유행옷」을 잘 소화해내는 강씨가 그렇다고 무턱대고 유행을 쫓는 유행파는 아니다. 단지 자신의 옷 스타일이 이런 옷들과 맞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조각을 전공, 현재 계원조형예술학교 부학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그가 즐겨 입는 옷은 검정·회색·밤색 등의 무채색계열. 지금껏 빨강·노랑 등 원색의 옷은 거의 입어본 일이 없다.「야한 색을 입고 싶어」 큰맘 먹고 구입한 옷이 고작 감색 니트정도다. 이런 자신에 대해 강씨는『옷 입는데 자신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그를 아는 주위사람들은 그를 옷 잘입는 멋쟁이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디자인이 많이 들어간 옷보다는 단순한 스타일의 헐렁한 옷을, 격식차린 정장보다는 편안한 옷을 선호한다.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강의와 작업으로 보내는 강씨에게 디자인이 많은 옷들은 일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유난히 팡탈롱·통바지 등을 즐겨 입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심플한 옷을 입는 대신 그는 목걸이·귀걸이·스카프 등 소품으로 멋을 누린다. 외국여행 때는 바쁜 일정에도 반드시 벼룩시장을 찾아 목걸이·귀걸이 등을 구입할 정도로 소품에 대한 그의 애착은 대단하다. 유명백화점이나 쇼핑센터 등을 이용하지 않고 굳이 벼룩시장들 찾는 이유는 값이 쌀뿐만 아니라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물건을 갖기 위해서」란다.
그는 또 스카프를 이용, 멋진 코디네이션을 할 줄 아는 탁월한 감각을 지녔다.『옷 한벌과 스카프 하나를 놓고 무엇을 살까 고민하다 끝내 스카프를 선택한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멋쟁이다운 강씨의 말이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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