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목기자의뮤직@뮤직] 케미컬 브러더스, 포장마차 간 까닭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여기 모인 관객을 전부 미국으로 데려가고 싶다.”

 지난달 28일 제2회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 참가한 미국 록그룹 테스터먼트가 공연 직후 상기된 표정으로 페스티벌 관계자에게 한 말이다. 마지막 날(지난달 29일) 대미를 장식한 영국 록그룹 뮤즈도 한국 관객의 열정에 감동했다. 이들은 공연 중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를 대여섯 번 외쳤다. 앙코르도 한 곡만 하기로 했었지만, 세 곡이나 불렀다.

 히트곡 ‘스타라이트(Starlight)’를 부를 때 2만여 관객이 고난도 ‘1-2-1-3 박수’를 따라 친 것은 멤버들의 기억에 남을 명장면이었다. 그들은 한국을 떠나며 주최 측에 보낸 e-메일에서 “7만5000명이 모였던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 공연만큼의 감동이었다. 한국 공연을 또 하고 싶다”고 말했다. 세계 최고의 일렉트로닉 듀오 케미컬 브러더스는 지난달 27일 공연 직후 “이 기분에 그냥 호텔방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며 근처 포장마차에서 다음날 새벽 5시까지 술잔을 기울였다.

 록 페스티벌의 주인은 뮤지션과 관객이다. 주최 측은 멍석만 깔아놓을 뿐이다. 관객의 열정은 뮤지션에게 뜨거운 에너지를 전달한다. 그러면 뮤지션은 보여주기로 한 것 이상의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내한 공연을 가진 뮤지션들은 “한국 관객은 우리에게 힘을 실어주는 최고의 관객”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공연 중 웃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영국 록그룹 플라시보의 보컬 브라이언 몰코도 지난해 펜타포트 무대에서 한국 관객에게 웃음을 선물했다. 올해 펜타포트에 참가한 미국 록그룹 오케이 고는 공연 전 인터뷰에서 “한국 관객의 반응은 일본 관객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뜨겁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공연을 마친 그들은 주최 측에 보낸 e-메일에서 “환상적이고 잊지 못할 시간이었다”며 뿌듯해 했다.

 한국은 해외 뮤지션에게 매력적 장소가 아니다. 공연 규모가 작은 데다 음반도 잘 팔리지 않기 때문. 일본 공연을 하거나, 아시아 투어를 할 때 들를까 말까 고민하는 정도다. 하지만 일단 한국에 오고 나면 ‘뜨거운’ 관객에 움직여 다시 한국을 찾는다. 올 3월 내한했던 뮤즈가 4개월 만에 다시 한국을 택한 것도 첫 공연의 좋은 기억 때문이다. 음반시장 규모에서 한국은 음악 강국은 아니다. 하지만 관객의 열정만큼은 식을 줄 모른다. 시장과 관객을 연결할 묘안은 없을까. 한국을 작지만 강한 ‘음악 강소국’으로 만들 길은 없을까.

정현목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