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돔을 씁시다〃보급 앞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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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후안 플라비에르 필리핀 보건장관(57)은 별명이「콘돔장관」이다.
필리핀 약국에는 요즘 콘돔을 구입할 때『플라비에르 주세요』라고 하는 사람이 생겨났을 정도다. 취임 9개월째인 플라비에르 장관이 에이즈 방지와 인구증가를 막기 위해 정열적인 콘돔사용 캠페인을 벌인데서 비롯된 현상이다. 의사출신의 플라비에르장관은 온화한 성품과 재치로 필리핀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있다. 지난해 12월 플라비에르장관이 피델라모스대통령의 태국방문 직전 기자회견장에서 대통령궁 출입기자들에게 콘돔을 나눠주는 장면이 그대로 TV에 방송돼 큰 파문을 일으켰다.『장관이 부도덕한 행위를 권하다니….』『태국정부에 결례가 아닌가』등 항의가 쏟아졌던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을 계기로 플라비에르장관의 콘돔캠페인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콘돔이 에이즈 바이러스를 막을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나 그건 틀린말이다. 에이즈 바이러스를 넣은 콘돔을 21일간 물을 담은 비커안에 담가두었지만 물속에 바이러스가전혀 침투하지 않았다는 실험결과도 있다. 이대로 5년만 지나면 필리핀도 태국처럼 되고 만다. 콘돔을 쓰자.』플라비에르 장관은 틈만 나면 이처럼 외치며 콘돔보급에 나섰다.
그러나 플라비에르 장관의 콘돔 캠페인에 필리핀 가톨릭교회가 정면 반박하고 나섰다.『콘돔은 생명의 전파를 인공적으로 차단한다. 이는 살인과 마찬가지다. 콘돔 사용은 혼외정사란 부도덕한 행위를 만연시키고 그 결과인 임신을 피하겠다는 비열한 생각』이라는 내용의 사교교서까지 발표하면서 플라비에르를 공격하고 있다.
이에대해 플라비에르 장관은『나는 콤돔때문에 재판없이 콘뎀(Condemn·유죄판결)됐다』고 유머러스하게 받아넘긴다.『나는 사람들에게 우선 부도덕한 행위를 삼가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어쩔 수 없을 때」콘돔을 사용하라는 것이다. 교회에선 아름다운 말을 하고 있지만 에이즈란 현실적 문제에 대응해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교회와 플라비에르장관의 대결은 장관의 승리쪽으로 결판나고 있다. 콘돔논쟁은 결과적으로 국민계몽 효과를 낳아 이제 필리핀에는 피자집처럼 전화만 하면 20분내에 콘돔을 배달해주는 서비스업까지 생겨났다. <김국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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