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법률적 명예회복 진통/「5·18」후속조치 애로점은 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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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전과말소해도 「유죄」는 남아/「무죄」처리 하자니 진상규명 불가피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 밝힌 대통령의 특별담화를 구체화하려는 정부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15일 청와대에서 관계부처차관회의를 가진데 이어 17일에는 황인성총리 주재로 경제기획원·내무부·법무부·국방부·교육부·보사부·정무1·공보처장관과 법제처장 및 광주직할시장이 참석한 관계장관회의를 열었다.
사실 대통령의 특별담화내용은 매우 구체적이다. 그동안 광주시민들이 희망해온 내용중 진상규명·책임자처벌만 빼면 거의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따라서 기념일제정·망월동묘역의 성역화·도청이전 및 기념공원조성·상무대의 공원화·지명수배해제·해직자들의 복직·부상자에 대한 치료·사망자등의 추가신고 기회등에 대한 행정적이고 실무적인 후속조치는 정부의 의지만 확실하다면 신속히 추진될 수 있다.
○묘안짜내기 골몰
그러나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들에 대한 전과기록말소등 명예회복조치는 당사자들의 요구와 우리 법체계안에서 가능한 해결방안간의 거리가 너무 멀어 적지 않은 진통을 불러 일으킬 소지가 높다. 정부관계자들도 대통령의 특별담화정신을 살리기 위해 묘안을 짜내려고 골머리를 앓고있다.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의 요구는 특별법제정으로 재심청구를 통해 무죄를 내려달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대항한 것이 죄가 아니므로 무죄판결을 받겠다는 것이다. 요컨대 사면·복권되거나 전과기록이 말소된다해도 자신들의 행위가 벌률적으로는 「유죄」로 남는 것이기 때문에 아예 원천적으로 사건을 재심리해 무죄판결을 내려 달라는 요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법률전문가들은 재심이 우리의 법체계 안에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뿐 아니라 그와 연관된 여러 법률적 문제를 야기한다는 입장이다.
○법질서문란 우려
형사소송법 4백20조가 규정하고 있는 재심청구의 사유는 ▲원판결의 증거된 서류 또는 증거물이 확정판결에 의하여 위조 또는 변조된 것이 증명된 때 ▲원판결·전심판결 또는 그판결의 기초된 조사에 관여한 법관,공소의 제기 또는 그 공소의 기초된 수사에 관여한 검사나 사법경찰관이 그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한 것이 확정판결에 의하여 증명된 때등으로 제한돼있다.
따라서 이같은 재심사유를 개정하거나 특별법을 제정,광주민주화운동관련자들의 재심요구를 받아들일때 소급입법이라는 좋지않은 전례를 남기거나 기존 형사소송법의 질서를 문란케 할 염려가 있다는 주장이다.
특히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유죄판결을 받은 뒤 사면·복권된 4백여명중 집시법이나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으로 아직 그형이 실효되지 않은 사람들도 60여명이나 된다.
『부당한 유죄판결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계속적으로 실정법을 위반한 이들의 경우 좀더 복잡한 문제를 야기한다. 크게 보면 단일사안일 수 있어 일단 광주민주화운동관련 유죄판결에 대한 재심을 허용할 경우 그 이후의 저항에 관련된 또 다른 사안에 대해서도 계속적인 재심을 허용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저항의 과정에서 일부는 방편상 좌익활동을 한 경우도 없지않다는 것이다. 좌익활동에 의한 범법까지도 사면·복권해야 하느냐는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또한 재심을 통해 5·18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이 무죄판결을 받게 되면 당시의 진압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셈이 돼 진압책임자의 처벌에까지 그 영향이 확산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재심요구의 뒷면에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라는 논리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대통령 특별담화에는 전과기록말소를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17일 관계장관회의에서는 앞서의 사면·복권에도 불구하고 이후의 실정법위반으로 일부 형선고가 실효되지않은 사람들에 대해 특별사면을 실시하고 형의 실효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검찰·경찰·읍면등에 보관된 전과기록을 말소해주기로 했다.
따라서 전과기록말소는 바로 수사기관이 영구보존하는 수사자료표상의 전과기록을 말소해 주겠다는 의미다. 쉽게 말해 컴퓨터 조회를 해도 전과사실이 드러나지 않도록 해주겠다는 것이다.
사실 광주민주화운동관련자들은 사면 복권이후에도 이 수사자료표의 유출로 취업등에서 불이익을 당하는등 적지 않은 불편이 있었다. 따라서 일부 관계자들은 수사자료표의 삭제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주장한다.
○쉽게 동의안할듯
그러나 수사자료표의 삭제로도 「유죄」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이 정부의 이같은 입장에 쉽게 동의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광주민주화운동관련자들의 실질적인 불편은 해소해주면서 1919년 3·1독립운동관련자들로부터 4·19의거 관련자들까지 다 기록돼있는 이 영구보존문서에서 전과사실을 말소해주는 것으로 사건 당사자들이 80년 5월의 아픔을 자랑스러운 일로 승화시켜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일부 관계자들은 『유관순의 항일업적과 3·1운동의 공과가 입증된것은 바로 수사자료표에 의거한 것이었다』며 『진실로 광주의 의거주인공들이 역사적 평가를 받고 싶으면 수사자료표가 보존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지적했다.<이재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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