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의 논리(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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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니체,야스페르스 등 서양 사상가들의 인생관에 따르면 모든 사람의 인생이란 보통 수준을 훨씬 넘는 야망을 함축하고 있게 마련이지만 좌절감이나 갈등 혹은 고뇌를 낳는 일이 왕왕 생김으로해서 비극이 잉태된다고 본다. 야망이 크면 클수록 상대적으로 거기에서 파생하는 비극의 중량도 더욱 무거워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삶에 있어서의 비극이란 암흑과 파멸을 의미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사람들 자신이 운명과 맞대결할때 맛보는 희열을 동반하기도 한다. 비극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강하면 강할수록 그 희열도 크다는 논리다. 이들 사상가들은 비극에 맞서려는 투쟁이나 의지 혹은 운명과 대결해 그를 초극하려는 의지가 서양문명의 상징이라면서 이것이 조용한 체념 내지 무관심으로 대변되는 동양정신의 특성과 구별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운명과 대결해 그를 초극하려는 의지를 완전히 포기했을때 발생한다. 자살의 원인별 유형을 정확하게 분류하기는 어렵지만 그 최대공약수적인 원인을 추출한다면 비관 혹은 염세로 집약할 수 있을 것이다. 절망하고 세상을 미워하게 되는 것은 물론 어떤 문제에 부닥쳤든지 해결의 길이 막혔다고 스스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개 자신이 생명을 버림으로써 그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문제들이 일거에 해결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엄밀하게 따진다면 자살은 기왕에 있었던 모든 문제들의 해결이며 끝이 아니라 「새로운 문제의 시작」임을 당사자들은 알지 못한다.
대학입시 부정사건에 연루돼 자살한 대학교직원도,사업실패로 자살한 중소기업의 사장도 그들 자신은 「나 하나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고 믿을는지 모르나 그들의 죽음은 또다시 새로운 문제점들을 야기한 것이다. 슬롯머신 사건에 연루된 현직 검찰간부의 자살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가 비극이나 운명을 초극하려는 의지를 가졌다면 과거의 모든 잘못을 떳떳하게 공개하고 심판받겠다는 자세를 보여야 했을 것이다. 그의 돌연한 자살로 슬롯머신 사건은 오히려 더 많은 의문을 갖게하고,그 배후가 더욱 복잡할는지도 모른다는 의혹을 안겨주고 있다. 자살로 해결될 일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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