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후」 철저히 파헤쳐라(사설)

마침내 슬롯머신 스캔들의 실체가 드러나려는가. 검찰이 경찰의 현직 치안감을 관련혐의로 전격 소환함으로써 슬롯머신 대부 정덕진씨에 대한 수사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 사건의 배후가 워낙 엄청난 것으로 알려져 있어서 그렇지,실은 여느때 같으면 현직 경찰 치안감이 관련이 되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놀라기에 충분한 일이다. 슬롯머신의 허가권도 경찰에 있고 승률조작 등 슬롯머신 비리의 단속권도 경찰에 있다. 그런데 바로 그런 권한을 가진 경찰의 최고위직 인사가 슬롯머신업계로부터 정기적인 상납을 받아왔을뿐 아니라 스스로가 슬롯머신 지분까지 소유하고 있었다니 놀랍지 않을 수 없다.
배후의 전모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으나 이 한가지 사실만으로도 그동안 슬롯머신이 왜 그렇게 늘어났으며,승률조작에 대한 그 잦은 말썽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버젓이 영업을 계속할 수 있었는지 충분히 이해된다. 도둑과 도둑을 잡을 사람이 한 통속이었던 셈이다.
이번 경찰치안감의 소환으로 수사에 새로운 돌파구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보기는 하지만 이제까지의 검찰수사는 국민의 기대에 크게 못미치는 것이었다. 소문의 내용은 너무나도 엄청나다. 시중에는 전·현직 검찰,안기부 고위간부,장성,국회의원들의 이름이 이미 오래전부터 나돌고 있다. 물론 검찰이 소문만으로 이들을 소환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들 소문에 대한 충분한 설명없이는 의혹이 검찰수사에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이다.
사실 이번 수사는 그 시작단계에서부터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 구속된 정씨는 검찰의 본격수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변호사를 선임했다. 그것도 담당검사를 정확히 알아 그 검사의 전 직속상관과 사법시험 동기생인 변호사로 선임했다. 또 정씨 사업의 내막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측근들은 하나같이 잠적해버렸다. 정씨는 사전에 어떻게 그런 소상한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을까. 검찰내부와는 어떤 소통이 없었던 것일까. 이 점만이라도 철저히 수사한다면 새로운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검찰은 초기와는 달리 현재 비공개로 수사를 진행시키고 있다. 엉뚱한 사람의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려 명예를 훼손케하고,또 관련자들이 검찰의 수사방향을 짐작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선의로 해석하고 싶다. 그러나 이로 해서 국민의 의혹이 더 증폭된 것만은 사실이다.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대통령도 철저한 수사를 지시한바 있다. 검찰은 물론 새 정부 전체의 위신이 걸린만큼 아무리 어렵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 배후는 성역없이 낱낱이 파헤쳐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