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대학가(유승삼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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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5월의 캠퍼스를 가본다. 실로 30년만에 대학가는 화사한 봄을 즐기고 있다. 주먹돌이 우박처럼 쏟아지고 매캐한 최루탄연기가 포연처럼 자욱하던 대학가에는 그것이 언제였느냐 싶게 춘곤마저 깃들여 있다.
4·19를 지냈고 5·16,5·17,5·18 등 대학가를 격랑에 휩쓸리게 했던 그 날들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건만,대학가는 마냥 평화롭다. 대자보가 어지러이 나붙어 있던 게시판과 담벼락엔 대신 외국어 특강과 각종 공연을 알리는 광고들이 들어서 있다.
○정치가 사라진 캠퍼스
지난 30년간에 있어 한국정치의 무대는 국회의사당이 아니라 대학캠퍼스였다. 여당은 물론 야당조차 한국 정치의 주역은 아니었다. 기껏해야 대학에서 불붙은 분노와 함성의 응원자였을 뿐이다. 그런 대학가로부터 거짓말같게도 하루아침에 정치가 증발되어 버린 것이다.
학원이 정치의 주무대가 되어 있던 시절,역대 집권자들은 학생운동이 결코 민주화운동은 아니며 북한의 사주를 받아 우리 사회 체제를 전복하려는 불순한 운동임을 거듭 강조해왔다. 학생운동에 대한 그러한 성격규정이 전적으로 빗나간 것은 아니었다. 북한의 사주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해도 군사독재에 대한 항거에서 출발했던 학생운동이 뒤에 가선 그 정치적 대안을 사회주의적 이념에서 찾으려 했던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이 점을 명분으로 삼아 역대 정권들은 물리력으로 무자비한 탄압을 가했다. 많은 사람들이 학원의 정치무대화도,학생운동의 반체제화도 그 근본뿌리가 정통성이 없는 정권의 성격과 독재에 있음을 지적했지만 집권자들은 그런 주장을 현실인식에서 투철하지 못한 나약한 책상물림의 소리로 몰아세웠다.
그러나 오늘날 누가 옳았던가는 자명해졌다. 학원에 평화를 가져다줄 수 있는건 최루탄이나 검거선풍이 아닌 민주화라는 화풍임이 현실로 입증되고 있다.
물론 사회주의권의 몰락도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만약 여전히 정권이 정통성을 얻지 못하고 권위주의적 통치에 정권유지를 의존했더라면 그래도 학원이 잠잠해질 수 있을까를 생각할때 역시 문제해결의 결정적 열쇠는 민주화였다고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 우리들은 우리들 자신이 쟁취한 민주화가 스스로 대견스럽고 그 결과인 학원의 평온에 안도한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무엇인가 허전함에 사로잡힌다. 이것으로 우리들의 할 일은 끝난 것인가. 이제 우리들은 과연 어디로 향해가고 있는 것일까. 정치와 이상이 함께 증발해버린 캠퍼스에서 문득 느낀 것은 그런 공허함과 의문이었다.
○이상주의의 실종인가
견디기 힘든 세월이긴 했으나 지난 30여년간 우리들 가슴속에는 저마다의 정치적 이상이 자리잡고 있었다. 억압의 정치는 역설적으로 정치적 이상주의의 기름진 토양이 돼왔다. 야당은 야당대로 정치적 탄압속에서도 정권쟁취의 이상에 불탔으며,학생운동은 학생운동대로 나름대로의 정치적 대안을 내세워 우리사회의 정치적 이상을 양적·질적으로 살찌워왔다. 평가는 어떻게 하건 그러한 정치적 이상의 추구가 우리 정치에 역동성을 부여하고 활기에 넘치게 했음을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정치에서 그러한 역동성과 활기가 사라져 버렸음을 발견한다. 현재로선 과거의 비리를 파헤치는 세찬 개혁 바람이 그 빈자리를 메워주고는 있으나 그것이 완전한 대체물일 수는 결코 없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우리 모두가 한결같이 바라던 것이다. 그렇지만 민주주의는 어디까지나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결국 민주주의로 무엇을 어떻게 이뤄낼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다.
그런 본질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지금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위기다. 어느 누구도 민주주의로 무엇을 건설해야할 것인가는 말하지 않고 있다. 누군가가 한국이 민주화의 길로 들어선 것은 경축할 일인데 그러면 한국인들은 그 민주주의로 무엇을 할 것인가하고 묻는다면 우리들은 과연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정치적 이상주의의 소멸은 정치의 행정화·왜소화를 가져오고 그것은 종국에는 정치적 무관심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민주주의의 위기우려
한 개인이 성공적인 삶을 이룩하려면 그 나름의 인생설계가 있어야 하듯 한 나라도 발전을 계속해 나가려면 국가적 설계가 있어야 한다. 그 국가적 설계는 사회안에 정치적 이상주의가 다양하게 꽃피어야 가능하다. 그 이상과 이상이 충돌해 때로는 격렬한 싸움을 벌일지라도 발전적 미래는 그 속에서만 창출될 수 있다.
정치가 증발해버린 캠퍼스에서 안도감을 느끼다가도 왠지 쓸쓸함을 지울 수 없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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