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단 축소의혹 야 “성토” 여 “침묵”/국회교육위 첫날회의(초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상임위 열기전 공개 청와대 지시 아닌가” 야의원/“나도 개혁의지 있다… 시간주면 해결할 것” 오 교육
10일 열린 국회 교육위 첫날 회의에서는 교육부가 지난 8일 발표한 대학부정입학자 학부모명단의 사전축소·은폐 여부에 관심이 모아졌다. 야당의원들은 또 교육부가 국회상임위를 앞두고 서둘러 명단을 내놓은 이유를 집중적으로 따졌다.
취임 두달을 갓 넘긴 해직교수 출신의 오병문교육부장관은 박석무·장영달·김원웅의원 등 민주당의원들의 집중공격을 받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올랐다. 반면 민자당의원들은 어느쪽도 거들지 못한채 착잡한 표정으로 회의장만 지켰다.
장영달의원이 먼저 『교육위에서 1년동안 교육부의 거짓말을 신물나게 들었다』며 『지금 생각하면 전교조교사들을 해직한 것은 도둑들이 파수꾼을 몰아낸 격이었다』라고 격한 용어를 써가며 교육부 공무원들의 안이한 자세를 비판했다.
장 의원은 이어 『왜 학부모명단을 축소발표해 국민들에게 실망을 끼치는가. 장관은 교육계의 쇄신과 개혁을 위해 부임했는가 아니면 장관 자리만 지키려고 왔는가』고 몰아 세웠다.
닦달받던 오 장관이 참다못해 답변을 자청했다. 하소연조의 답변이었다.
『장 의원께서 나보고 개혁자냐 그저 존재하는 자냐고 묻는데,사실은 나도 슬프다.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는가. 교육부는 힘이 약하다. 그리고 교육적 차원도 배려해야 한다. 나는 분명히 개혁의지가 있다.
그러나 부임후부터 줄곧 두들겨 맞기만 했다. 밖에서는 교육부 공무원들 목을 떼라고만 하는데 그 사람들은 어디로 보내느냐는 애로도 장관으로서는 있다.
요사이 1백만 학생들이 자기 부모들에게 「아버지도 돈좀 버십시오. 권력좀 가지십시오」라고 말한다고 한다. 부정입학사건을 학생들이 TV로 지켜보고 있다. 그 학생들에게 상처를 주지는 말아야 한다. 답답한 심정이다. 다그치지만 말고 시간을 달라. 시간을 주면 모든 법적·제도적 문제를 정리해 보이겠다.』
장 의원이 안됐다 싶었던지 어조를 누그러뜨리며 『앞으로 부정입학자 명단이 더 나오면 학부모 명단을 밝혀 사회적 심판을 받게 하라』고 요구했다.
이어 박석무의원이 나서서 『교육계 비리는 장관 부임 이전의 일』이라고 옹호하며 『새 장관께서 오셨으니 구악을 일소하고 새출발해야 하지 않느냐는 애정어린 충고에서 드린 말씀』이라고 오 장관의 개인적 입장을 두둔했다.
박 의원은 그러나 『국회에서 명단을 제출해 달라고 했는데 교육부가 자료를 우리에게 주기전에 선수쳐서 발표한 것은 어떻게 된 일인가』고 학부모 명단의 발표경위를 문제 삼았다.
김원웅의원도 『상임위에 앞서 명단을 발표한 것은 청와대와 긴밀히 협조했기 때문이 아닌가. 이런게 바로 군사정권에서 보던 행태요,개혁의 대상이지 않은가』고 함께 목청을 높였다.
오 장관이 다시 나섰다. 『청와대의 지시를 받은게 아니다. 사실은 내가 명단을 공개하자고 건의했다. 추가명단도 각 대학에 독촉해서 나오는대로 국회에 제출하겠다.』
의원과 장관의 「교육개혁」 공방을 지켜보던 조순형위원장(민주)이 『이 문제는 내일 본격적으로 논의될테니 오늘은 이만하자』고 중재에 나서 산회를 선포했다.
교육부 관리들은 오 장관을 따라 회의장을 나서며 제대로 얼굴을 들지 못했다.<노재현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