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우리 말고 또 누가 이 밥그릇에 누웠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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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선우(1970~) '우리 말고 또 누가 이 밥그릇에 누웠을까' 전문

이 집 한 채는
쥐들의 밥그릇
바퀴벌레들의 밥그릇
이 방을 관 삼아 누운
오래 전 죽은 자의 밥그릇
추억의, 욕창을 앓는 세월의 밥그릇
맵고 짠 눈물 찐득찐득 흘려대던
병든 복숭아나무의 밥그릇
멍든 구름의 밥그릇
상처들의,
이 집 한 그릇

밥그릇 텅텅 비면 배고플까봐
그대와 나 밥그릇 속에 눕네
그대에게서 아아 세상에서 제일 좋은
눈물 많은 밥냄새 나네



날더러 내 시를 설명하라고? 그것은 안 돼. 세상에서 제일 어리석은 일이야…. 영화 '일 포스티노'에서 파블로 네루다가 이제 시공부를 시작하는 한 집배원에게 한 말이다. 자신의 시를 설명하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어리석은 일이라면 타인의 시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몽매한 일인지…. 어린 시절 작은 종이배를 접어 물위에 띄우고 강을 따라 달려내려간 기억이 혹 있으신지? 그 종이배들은 흘러 어디로 갔을까, 문득 생각해 본 적 있으신지? 종이배를 강물 위에 띄운 기억 같은 건 없으시다고? 오오, 그래서 시를 설명하는 일은 더더욱 난해한 일이 되고….

곽재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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