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동요막기 “응급처방”/「뇌물진급」 전원불기소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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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해공군의 형평성불만 무마위한 포석/징계위 회부로 인사비리 조기 마무리/「성역없는 개혁」에 상처남겨
8일 국방부가 군인사비리와 관련,구속수감된 해·공군 장성 등 13명 전원을 불기소처분키로 한 것은 최근 확산 일로를 치닫고 있는 군내부의 동요 등 일련의 사태가 급기야 군의 위기를 초래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 비롯된 「긴급 수습조치」로 풀이된다.
국방부 검찰부는 이번 결정과 관련,『이들의 죄상은 명백하나 뇌물 공여라는게 이미 3∼4년전의 일이고 또 사후진급에 대한 감사 표시로 행해졌다는 점 등이 감안됐다』고 밝혔다.
이들 13명의 구속자들은 다음주 안으로 일단 석방,군별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돼 적절한 징계처분을 받게 된다.
징계에는 파면 강등 등 중징계와 경고 등 경징계가 있으나 전원이 중징계되어 전역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국방부의 조치는 ▲해·공군에만 치중됐다는 형평성의 문제와 ▲그로인한 일부 영관급 장교들의 심상치 않은 동요 등 크게 두가지가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현직 비행단장 구속으로 인해 야기됐던 공군 조종장교들의 동요는 차츰 집단화 경향을 띠기 시작했고 이번 주를 고비로 모종의 중대카드가 제시될 것이라는 위기의식마저 팽배해 있는 상황이었다. 군당국은 조종 장교들의 집단움직임이 사실무근이라고 계속 발뺌했으나 일부 장교들은 집단으로 전역신청을 하는 등의 수단을 강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 이양호공군참모총장도 수차에 걸쳐 공군의 이같은 동향을 권영해국방장관에게 보고,선처를 요구했으나 권 장관은 이를 번번이 묵살해 왔으며 오히려 군불안을 언론탓으로 돌리는 등 사태를 은폐하려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돈제독 등 해군장성 구속이후 해군당국이 실시한 여론조사와 공군 조종장교들의 요구사항 가운데는 『국방장관이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는 내용이 나타났고 이는 즉시 권 장관과 김영삼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됐다.
특히 육군에 대해서는 가장 광범위한 진급 인사비리가 있었을 것이라는 혐의에도 불구하고 국방부측이 전혀 조사도 하지 않는 등 편파적이라는 인상을 주어 사태는 더욱 악화됐다.
여기에 감사원의 율곡사업 감사가 국방부의 핵심문제를 향해 좁혀들어오고 임시국회에서도 야당의원들의 공세가 예상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방부는 결국 세에 밀린 나머지 이같은 응급처방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이날 국방부의 갑작스런 급선회 방침은 권 장관의 청와대방문(8일 오전11시)직후 발표된 것이지만 김 대통령은 군수사와 관련,인사비리는 조기에 매듭짓되 군수 비리 등은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간다는 대체적인 원칙을 이미 수립해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번 조치는 몇가지 문제를 남기고 있다. 그 첫번째는 군법의 지나친 편의적 운용이다.
일반 형법상 구속 주체가 이를 번복,불기소처분하는 경우란 있을 수 없으나 군형법에서는 「관할관제」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토록 돼있다. 이들이 군별 징계위에서 어떤 처리를 받든지간에 떠들썩하게 구속했다가 사실상 무죄방면하다시피 한 것은 지나친 재량권 행사다.
또 한가지는 군개혁에 대한 한계를 드러냈다는 점이다.
군인사비리에 대해 철저히 수사하고 성역없는 조치를 강조해온 김영삼정부로선 군내부의 동요라는 이유로 갑자기 원래 방침에서 후퇴,엄정한 사정의 원칙에 처음 차질을 맛보게 됐다. 이런 후퇴가 율곡사업 감사 등에도 똑같이 적용될는지 주목된다.<김준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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