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세상보기] 수학은 배워 뭐하느냐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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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그 어려운 수학을 배워 도대체 어디에 써먹느냐는 불만섞인 질문을 자주 듣게 된다. 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수식과 기호로 가득한 난해한 수학을 배웠지만, 수학과 직접 관련 있는 분야가 아니면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수학에 대한 레테의 강(망각의 강)을 건넜다는 푸념을 많이 들었다. 수학을 공부한 그 많은 시간에 차라리 다른 지식을 섭렵했더라면 훨씬 더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론을 펴는 사람도 있었다. 솔직히 이와 같이 '수학무용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수학 공부의 가치를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이럴 때면 수학은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제반 과학의 기초이기 때문에 중요하다는 '수학부국론'을 이야기해 보기도 한다. 그러나 과학 기술 발전에 직접 기여하는 것은 극소수 영재이므로, 국가 경쟁력 제고라는 미명하에 모든 학생의 수학 학습을 독려하는 것은 난센스라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일리 있는 말이다. 일반인들로서는 수학이 얼마나 다양한 분야에서 유용하게 사용되는지 인식하고 수학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정도면 된다.

수학의 가치를 강변하기 위한 수학부국론이 별 설득력이 없다면 그 다음으로 꺼낼 수 있는 것은 수학의 '정신 도야적 가치'다. 수학은 그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수학 학습을 통해 길러진 사고 능력은 다른 분야에서도 소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수학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논리적 사고력, 비판적 사고력, 창의적 사고력, 추상화 능력, 귀납적.연역적 추론 능력 등은 생활의 매 장면에서 요긴하게 쓰이는 자산이 될 수 있다. 교육자 페스탈로치는 수학 공부를 '정신 체조'에 비유했는데, 이는 정신 계발에 기여하는 수학의 유용성을 말한 것이다.

흔히 수학자라고 하면 원론에만 충실하고 융통성 없는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수학의 증명은 철저한 근거에 입각해 엄밀하고 논리적으로 진행된다. 그렇기에 수학 연구를 업으로 하는 수학자들은 일상사에 있어서도 공인되지 않은 편의적인 사실을 임의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며, 이로 인해 고지식하다는 평가를 받는지도 모르겠다. 융통성이라는 이름으로 편법이 난무하는 이 세상에 수학 연구의 방법론은 '원칙에 대한 충실함'이라는 교훈을 던져 준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세운 아카데미아의 정문에는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들어오지 마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다. 플라톤은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 통치해야 한다는 이상국가론을 주장했는데, 여기서 관건이 되는 것은 어떻게 교육해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을 길러낼 것인가 하는 점이다. 플라톤에 따르면 수학은 허상의 세계에 매여 있는 사람을 진리와 실재의 세계로 인도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학문이다. 그래서 국가를 통치할 사람은 20세부터 30세까지 10년 동안 수학을 공부하도록 법률로 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현재의 입장에서 보면 다소 과장되게 들리지만, 플라톤은 정치를 할 사람은 수학이라는 학문에 배어 있는 진리에 대한 사랑, 사고의 치밀함과 엄정함, 정직하고 올곧은 품성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 수학 참고서 중 수십년 동안 부동의 자리를 지켜온 것은 '정석(定石)'과 '해법(解法)'이다. 서양 수학의 원류로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인쇄됐다는 수학책은 기원전의 수학자 유클리드가 지은 '원론(原論)'이다. 이 책의 제목들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것 같다. 사회의 각 영역에서 모두가 '정석'과 '원론'을 따르다 보면 자연스럽게 '해법'의 시대가 도래하지 않을까.

박경미 홍익대 교수.수학교육학

◇약력:서울대 수학교육과 졸. 미국 일리노이대 수학교육학 박사.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연구원.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