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수정」 자율로 충분한가(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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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의학의 발달로 인공수정에 의한 임신이 일반화된 것은 불임부부에게 복음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의술에 의해 인공수태를 한 부부가 지난 30여년동안 국내에서만 1만5천여건에 이른다는 추산만 봐도 인공수정의 대중화 정도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인공수정시술이 성행하는데 따른 부작용도 적지 않은게 현실이다. 시설과 자격면에서 부적격하고 비위생적인 시술이 행해지는가 하면 신성한 생명의 잉태가 상술에 이용되기도 하는 부작용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일어난 경희의료원과 상당수 의료기관들의 비윤리적인 불임시술 관행이 바로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의학협회가 6일 발표한 「인공수태윤리에 관한 선언」은 비배우자간의 인공수정시술과 체외수정 등에 관한 윤리적 준칙과 시술지침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앞으로 관련의료인들은 이 지침을 충실히 이행해야할 것이며 관련단체나 정부기관도 지침의 이행여부에 대한 감시와 감독에 소홀함이 없어야 하겠다. 의협은 각 의료기관이 지침을 따르도록 권장하며,이를 어길 경우 관계당국에 고발해 의법 조치하겠다는 결의를 표명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이 지침들이 권장사항인데다 의법조치할 수 있는 적용 법조문이 의료법중 「의료인의 품위손상」조항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이미 86년에 선포된 대한산부인과학회의 「체외수정에 관한 윤리강령」이 유야무야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또 20년전에 제정된 의료법의 품위손상 조항이 비윤리적인 인공수정의 성행에도 불구하고 적용된 적이 없다는 사실에서 이번 선포된 지침에 대한 기대에 회의를 갖지 않을수 없는 것이다.
선언의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실천이 뒤따르지 않으면 빛좋은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번 선언의 취지가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실천될 수 있도록 필요한 법제도를 정비해 인공수정의 남용을 막고 안전성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특히 첨단과학의 발달에 따라 인위적으로 남녀의 성을 선별해 출산을 조작하는 일은 이미 의료계의 공공연한 비밀이 돼 있다. 특정목적을 위해 유전자를 조작하거나 수정란을 변형시키는 것도 규제해야할 과제이므로 이러한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다룰 법제도의 마련이 필요하다.
물론 이런 문제들이 의료인들의 윤리의식과 양식에 의해 자율적으로 규제될 수 있으면 가장 좋다. 그러나 약간의 틈만 있어도 부정과 부도덕이 끼여드는 사회풍토에서 전적으로 의료인들의 자율에만 기대하기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의료·보건분야에서도 이러한 규제의 제도화가 불가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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