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된 「검은돈 은닉처」/스위스은행 어떤곳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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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철저한 비밀보장… 120곳 성업/국제여론비난에 최근 점차위축
노태우 전대통령의 딸 소영씨부부가 미국은행에 분산예치한 20만달러가 스위스은행에서 인출된 것으로 미검찰에 의해 알려지자 검은 돈의 은신처로 유명한 스위스은행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스위스은행들은 1934년 은행비밀법이 만들어진 이후 독특한 비밀계좌제도로 세계적인 검은 돈 세탁창구,해외도피자금의 은신처로 이용돼왔다. 마르코스 전 필리핀대통령,노리에가 전 파나마 최고실력자,차우셰스쿠 전루마니아 대통령,팔레비 전이란국왕,페론 전아르헨티나 대통령 등 외국의 독재자나 마피아 등 범죄조직이 스위스은행에 비밀계좌를 가졌던 것은 널리 알려져있다.
물론 스위스은행이라고 해서 모두 검은 돈을 세탁해주는 은행은 아니다. 주로 취리히역 주변 반호프가 뒤편과 제네바 주변에 많이 몰려있는 스위스의 비밀은행은 줄잡아 1백20개정도. 2차대전이 터지자 전쟁을 피해 스위스로 몰려든 유대인들이 돈을 안전하게 맡겨두는 곳으로 이용하면서 유명해졌다.
2,3층짜리 작은 건물에 1백명정도의 행원으로 운영되는 은행이 많은 편이다. 「BANK」 간판조차 없는 곳도 있다. 이들 은행은 고객이 돈을 갖고 가면 번호 하나만으로 계좌를 개설해주는 이른바 번호계좌 거래방식으로 예금자를 철저히 보호해준다. 예금자의 신원은 담당직원과 경영진 등 극소수만 알고 있을 정도다. 금고에 넣어두기만 하는 것은 옛날이야기이며,주문에 따라 재테크 전문가들이 돈을 불려주기도 한다.
특히 「B형 계좌」는 스위스 비밀주의 제도의 대표적인 방식. 이는 예금주 본인이 계좌를 개설하지 않고 변호사나 재산관리인을 통해 계좌개설을 대리신청할 경우 이들 대리인이 예금주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는 서약만으로 계좌개설을 해주는 것을 말한다. 이 계좌는 89년말 현재 3만개,1천3백50억달러에 이르렀는데 스위스은행에 대한 국제적인 비난여론이 많자 91년 10월부터 폐지했다. 세계적인 이 스위스 비밀은행도 요즘은 국제여론에 밀려 위축돼가고 있다. 스위스의 은행감독원은 최근 은행들로 하여금 법원이 범죄행위로 판정하면 예금자의 신원과 자금의 성격을 공개토록 조치하기도 했다.
국제금융전문가들은 유럽공동체(EC)소속 12개 나라가 90년 자금세탁규제의정서에 서명한데 이어 올부터 이를 시행키로 함에 따라 마약자금 등 검은 돈의 세탁중심지가 옛소련 지역을 포함한 동유럽이나 중동쪽으로 옮겨갈 것으로 보고 있다.
동유럽국가들은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하면서 금융시장도 개방하고 있는데 자금세탁을 규제해본 경험이 없을 뿐더러 제도가 허술해 검은 돈을 가진 사람이나 중개업자들이 매력있는 곳으로 여긴다는 것이다.<양재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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