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교장선생님의 조용한 개혁|정영숙<서울 구로구 고척1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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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엄마 체육복 어디 있어요.』
『어젯밤 비가 와 오늘 체육 못할 것 같으니 입은 대로 가거라.』 『아니어요. 우리 교장선생님이 겨울 방학 내내 모래를 깔아 비만 그치면 금방 물이 빠져버려 체육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일요일에 학교로 놀러가요. 교장선생님과 다른 선생님들께서 쉬는 날도 나와 꽃과 나무를 심었는데 너무 너무 예뻐요. 조금 더 있으면 동물원도 만들고 교실도 깨끗하게 칠해 준 댔어요. 또….』
자랑할게 너무 많아 입을 다물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며 사람의 힘이란 쓰기에 따라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도 불행하게도 할 수 있음을 본다.
요즈음 한창 사정바람이 불어 가는 곳곳마다 썩었다고들 한탄이지만 우리 아이들 학교는 훌륭하신 교장선생님 덕분에 마음 가득 꽃향기와 희망을 안고 산다.
3년 전 큰아이를 데리고 학부모가 된다는 설렘으로 들어선 학교는 너무도 실망이 컸다. 학교 앞에는 교도소와 구치소가 있어 등·하교 길을 가득 메운 면회차량으로 위험했고, 낡은 스피커 소리는 비행기 소음에 묻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운동장엔 나무 한 그루 없이 옆 교도소와 한집 같았고 운동장은 비나 눈이 오면 며칠씩 질퍽거려 나갈 수도 없었다.
그래서 이사가려 집까지 팔았는데 다시 오신 교장선생님 덕분에 전세를 살면서도 떠날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오신지 2년반 되었는데 추우나 더우나 방학도 공휴일도 없이 일꾼들과 해질 때까지 운동장·창고·교실 등을 다니며 너무나도 놀라운 변화, 아니 개혁을 이루셨다.
넉넉하지 못한 학교예산에 기부금도 안 받고「사재」를 털어서 하면서도 아이들이 행복해 하고 공부 잘하면 더 바랄 것 없으시다며 도리어 이런 낙후된 학교로 온게 행운이라 웃으시는 교장선생님. 여름 아닌 겨울에도 새카맣게 타 일하시는 모습을 보며 가끔은 도와드릴 수 없어 안타까울 때가 많다. 혹 저러다 지쳐 그만 두겠다시면 어쩌나 싶기도 하고.
그때 아이들과 기도를 하기로 했다.『하느님, 우리 교장선생님이 더욱 건강하시게 해주시고 하시는 일이 잘되도록 많이많이 도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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