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비현실이 섞여있는 게 우리 삶”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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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다는 미쉐린 타이어에 불안하게 매달려 신문을 읽는 남성. 비디오 영상의 일부다.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김소라(42)의 개인전 ‘헨젤과 그레텔’. 국제적으로 잘나가는 작가의 ‘개념적’ 현대미술을 맛볼 수 있는 기회다. 국제 비엔날레와 미술관의 단골 초대작가가 한국, 그것도 상업화랑에선 처음 여는 개인전이다.

김씨는 2002년 스페인의 카스테용 현대미술관, 2003년과 2005년 베니스비엔날레, 2005년 요코하마트리엔날레, 2006년 부산 비엔날레, 2007년 영국의 발틱현대미술관 등에서 전시를 했다. 올 가을, 이스탄불 비엔날레에도 참가한다.

전시 제목 ‘헨젤과 그레텔’은 독일 그림 형제의 동화에서 따왔다. 작가는 “헨젤과 그레텔이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과정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닮았다”며 “지금 살고 있는 이곳이 현실인 듯 하지만 실은 현실과 비현실이 뒤죽박죽 섞여있는 것이 우리네 삶”이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세 개의 소주제별 방으로 나눠진다. 첫 방은 ‘비밀은 없어(No Secret)’. 영문 점자로 된 네온 등이 빛을 발하고, 수십 권의 책에서 발췌한 구절을 조합해서 만든 시가 벽에 붙어있다. 단서도 있다. 벽에 붙어있는 인쇄물은 한미자유무역협정 기사를 담은 4월 3일자 일간지에서 글과 그림은 삭제하고 숫자만 따로 출력한 것이다. 일상적 사고를 벗어나 작가가 이야기하는 ‘혼란의 현실’로 들어가기 위한 장치인 듯 하다.

둘째 방은 ‘후회는 없어(No Regret)’. 잎이 무성한 나무들 아래 사무실 분위기의 탁자가 놓여있다. 탁자는 일상생활 공간을, 나무는 ‘방황의 숲’, 즉 비현실이자 진정한 현실일지도 모르는 공간을 상징한다.

2층에는 셋째 방 ‘돌아갈 수 없어(No Return)’가 기다린다. 4월 3일자 신문의 광고와 기사를 소재로 제작한 비디오 네 편을 상영 중이다. 전시장을 둘러보고 나면 “잘 모르겠지만 뭔가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작가에게 물었다. “이번 전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 김씨는 “관객 모두를 이해시킬 순 없다. 모두가 이해한다면 나는 빵점짜리 작가일 것”이라고 짤막하게 대답했다. 또 물었다. “그렇다면 작품을 통해 뭘 말하고 싶은가.” 그는 “나는 관객이 어떤 반응을 보일 지에만 관심이 있다”며 입을 다물었다. 전시는 8월 26일까지. 02-3210-9800.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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