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관예우(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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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960년 4월28일 오후 2시35분 하야하는 이승만대통령이 넘버를 가린 「관1호」 승용차를 타고 경무대를 떠나 이화장으로 향할때 수많은 서울 시민들이 연도에 늘어서서 노대통령을 전송했다. 젊은 세대들은 손을 흔들거나 박수로 떠나는 길을 전송했으나 나이든 세대들은 눈시울을 붉히거나 눈물을 흘려 작별의 아쉬움을 보였고 나이든 여인들 가운데는 소리내 흐느끼는 이들도 많았다.
이 모습을 취재한 외국기자들은 『한국은 역시 동방예의지국이어서 예절과 관용을 베풀줄 아는 국민들』이라고 치켜세웠으나 『한국인들은 과거를 너무 쉽게 잊는 것이 아닌가』하는 내용의 비판적 기사를 쓴 기자들도 있었다. 지난날 아무리 많은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몰락하거나 일단 그 자리를 물러나게 되면 되도록 그 과거를 덮어주려하고 용서하려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 한국민족의 특성이자 미덕이라고 할 수 있다.
10·26사태가 발생했을 때 박정희대통령의 정치적 과오야 어떻든 많은 국민들이 진심으로 애도의 뜻을 표했던 일이라든지,6공초기에 청문회의 증언대에까지 올라야 했던 전두환 전대통령의 모습을 안쓰러운 눈길로 바라본 많은 국민들의 심성도 그러한 특성을 감안하면 당연한 것이었다.
「장관급 이상의 관직을 지냈던 이에게 퇴관후에도 재임 당시의 예우를 베푸는 일」이라는 의미로 쓰이는 「전관 예우」라는 표현도 분명 우리네 미덕가운데 하나다. 퇴임한 장관을 계속 「장관님」으로,한번 국회의원을 지낸 사람은 낙선했거나 정계를 은퇴했더라도 「의원님」으로 불러 예우해주는 것도 일반화되어 있는 관습이다.
그같은 관습이 무조건 매도돼야할 까닭은 없지만 「전관 예우」가 당사자의 「기득권」으로 작용할 때는 문제가 발생한다. 때로는 과거의 경력이 치명적 잘못까지를 덮어주는 방패의 구실을 하기도 하며,새로운 비리의 소재로 이용되는 사례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개혁에 성역이 있을 수 없다」는 정부측의 되풀이 발언도 「전관 예우」에 대한 국민들의 의구심을 의식한 것이며,대법원이 사법개혁안 가운데 「전관예우 풍토개선」을 최우선의 목표로 삼은 것도 법관퇴임후 1,2년내에 한밑천 잡는다는 법조계의 잘못된 관행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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