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작&상영작] 오종과 함께 떠나는 발칙한 상상여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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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극장에 걸리는 영화는 한국 영화 아니면 미국 영화, 두 종류밖에 없다고 할 만큼 편중이 심하다. 밥을 먹거나 햄버거를 먹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하라는 것처럼 비친다. 초밥도 먹고 싶고 스파게티도 맛보고 싶고 매콤한 카레 향도 맡고 싶건만, 요즘 한국의 영화 시장은 마치 구내 식당에 걸린 메뉴 같다. 그래서 좀더 다채로운 영화를 즐기려는 관객에게는 이른바 시네마테크를 지향하는 작은 극장들의 존재가 더없이 고맙고 반갑다.

서울 정독도서관 옆에 위치한 서울아트시네마(02-720-9782, 02-745-3316)도 그런 곳 중 하나다. 유럽과 제3세계, 다큐멘터리 등을 기획전 형태로 상영하는 이곳에서 9일부터 18일까지 프랑수아 오종(左) 감독전을 연다.

프랑스 출신의 오종 감독은 올해 37세지만 감독으로서는 이미 자기 위치를 다진 지 오래다. 파리 태생으로 파리 제1대학에서 영화학 석사를 마치고 프랑스국립영화학교를 졸업한 그는 기발하고 황당한 상상력으로 관객을 매료시켜왔다. 특히 동성애라든지 근친상간.살인.자살 등 극단적인 주제를 다루면서도 그 서술 방식이 워낙 개성 넘치고 특이해 주제의 잔혹함이 무색해지는 경우가 많다. 저택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유머러스한 뮤지컬 형태로 풀어낸 '8명의 여인들'이 대표적인 예다.

이번에 상영되는 영화는 '바다를 보라'등 1990년대 후반에 만든 장편 여섯편과 다섯편의 단편 등 모두 열한 편이다. '바다를 보라'(97년작)는 딸과 함께 휴양지에서 휴가를 보내던 여인이 낯선 배낭족의 방문을 받으면서 공포스러운 게임에 말려들어가는 상황을 그렸다. '선이 악을 이긴다'는 일반적인 믿음과 기대를 비웃듯 놀랄 만한 사건이 벌어지고 엽기적인 결말이 기다린다. '시트콤'(98년)은 퇴근길에 우연히 애완용 흰쥐를 집안에 들여놓게 된 중산층 남자에게 찾아오는 끔찍한 사건을 다룬다.

'크리미널 러버'(99년)는 재미로 살인을 저지른 10대 연인이 시체를 묻기 위해 산속으로 들어갔다가 길을 잃어버린다는 설정이다. 살인적 광기에 탐닉하는 10대의 뒤틀린 욕망을 파헤친 이 작품은 동화 '헨젤과 그레텔'을 현대판으로 재구성했다는 평을 들었다.

이 밖에 '워터 드랍스 온 버닝 락'(2000년)은 남녀의 삼각관계를 유머러스하게 풀었으며 '사랑의 추억'(2000년) 은 추억과 환상에 집착하는 여인을 통해 중산층 가정의 어두운 측면을 드러낸다. 얼마 전 개봉됐던 '스위밍 풀'(2003년)은 창작의 고통이라는 테마를 통해 인간 심리 깊숙한 곳에 숨겨진 욕망을 보여주는 미스터리 스릴러다.

1회 관람료는 6천원. www.cinematheque.seoul.kr

이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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