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은 『당신은 누구십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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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도종환씨는 교육운동에 종사하는 시인이다. 달리 말해교육 민주화, 혹은 참교육 실현을 위해 진력하는 전교조해직교사로서 창작활동 또한 왕성한 민족문학진영의 주요 시인이다. 그가 해직되기 전에 낸 유명한 사랑의 시집이 『접시꽃 당신』이요, 교육운동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시집이『지금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인데 그 두 시집의 서로 다른 경향을 발전적으로 추스려 통합시킨 성과가 최근에 발간된 시집『당신은 누구십니까』에 모여 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의 핵심적 화두이자 주제는「사랑」이다. 그런 뜻에서 사별한 아내를 간절히 그리워하는『접시꽃당신』의 연장선 위에 놓인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겠는데 그리워하는 대상으로서의 「당신」이 특정한 여인으로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이 많이 다르다. 표제시 「당신은 누구십니까」의 한 부분『숲으로오라하셔서 숲속으로 당신을 만나러 갔습니다/만나자 하시던 자리엔 일렁이는 나무그림자를 대신 보내곤/몇날몇밤을 붉은 나뭇잎과 함께새우게 하시는/당신은 어디에 계십니까』에서 보듯 「당신」은 만해의 님과 유사한 존재로 나타난다.
얼핏 보아 이 시집은 사랑에 관한 비유와 경구로 가득차 있다.『꽃이 피기 전 단내로 뻗어오르는 찔레순 같은/이것이 사랑임을 알아요』나 『사랑은 우리가 우리 몸으로 선택한 고통입니다』와 같은 시구가 그 예다. 하지만 이 시집이 진부한 사랑타령과 구분되는 이유는 사랑도 살아가는 일이라는 깨달음과 함께 사랑과 삶을 일치시키는 그의 진지하고도 순수한 자세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도종환에게 교육운동은 삶 속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공간이자 방법의 하나로 선택된 것이요, 그러한 실천을 통해 그의 사랑이 폭과 깊이를 획득해 간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의 사랑의 대상인 당신은 산으로 변용되기도 하는데 그러한 변용이 가능해진 이유는 그의 사랑이 폭과 깊이를 획득한 것과 연결될 것이다.
가령 『큰산으로 가는 길에는 깊은 물이 있다/물은 큰산을 품어 더욱 깊어지고/산은 물을 따라 내려가 더욱 맑아진다/마음이 크다는 것은 마음이 깊다는 것이다/마음이 깊다는 것은 마음이 맑다는 것이다』(「큰산가는 길」)와 같은 시를 보면 그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사당이란 완성의 형태로가 아니라 끊임없는 진행의 상태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큰산가는길」에 나오는 마음이 크고 깊고 맑아지는게 곧 사랑이요, 그것은 또한 시인의 시심과 다르지 않다.
이와 같이 시인에게 끊임없는 진행의 상태로 존재하는 사랑은「절망의 벽」을 뒤덮고 넘 어 가는 담쟁이의 형상으로도 나타난다. 서두르지 않고 절망의 벽 앞에 나아가『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는 담쟁이는 다름아닌 사랑의 객관적상관물이다.
절망을 이기는 사랑을 한다는 것은 좌절감에 달리는 독자들에게 도종환 시인이 제시하는 가장 요긴한 처방이다. 그리고 바로 그점이 설명조의 경어체라는 비판을 견딜 수 있게 하고 만해 한용운의 아류라는 비판을 넘어서게 하는 『당신은 누구십니까』의 시적 성취로 보인다. 최두석<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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