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은 "검은돈 은신처" 여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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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스위스 은행들이 제3세계 부정축재자들의 「검은 돈」도피처로 여전히 각광받고 있다. 스위스 정부가 독재자들의 재산도피처라는 오명을 씻겠다고 다짐했지만 예금관련법이 워낙까다로워 사실상 부정축재자들의 재산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보호되고 있다.
최근에는 모부투 세세 세코 자이르대통령이 40억달러를 스위스은행으로 빼돌린 것으로 밝혀졌다. 자이르에도 민주정부가 들어서면 모부투대통령의 불법유출 재산에 대해 반환을 요구하고 나설 것이 확실하치만, 지금까지 예로볼때 스위스은행의 돈만은 계속 모부투의 것으로 남을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지난 20여년동안 독재자들의 불법재산을 환수하기위해 여러나라들이 노력을 기울여 왔으나 대부분 무위로 돌아갔다. 유일한 예외로는 독재자 페르난드 마르코스의 불법예금 4억달러를 회수하게 될 필리핀이 고작이다. 그것도 필리핀 정부가 당초 요구한 15억달러에는 크게 부족한 금액이다.
독재자들의 부정재산 환수가 그렇게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까다로운 스위스법에 그 이유가 있다.
스위스법에는 부정재산 환수요구를 해당 정부만 하도록 돼있다. 이는 바로 독재자가 국내에서 완전히 몰락한 후에야 비로소 부정축재 재산 환수노력이 시작될 수 있다는 뜻이다. 또 스위스법의 예금비밀 보호조항의 적용을 피하기 위해서는 각국 정부들이 독재자들을 기소할 때도 스위스법에서 중범죄로 인정되는 죄목, 예를들어 횡령등으로 해야 한다. 각국 정부들이 독재자들을 횡령으로 기소하는 데 성공한다 하더라도 주법원을 거쳐야하기 때문에 예금관련 서류에 접근하기까지는 수년이 걸린다.
이같은 절차를 밟고나서도 독재자의 인권이 충분히 존중되는 법원에서 독재자에 대해 유죄판결이 내려져야만 예금이 해당 국가로 넘어간다. 해당국가 법원의 독재자에 대한 유죄판결도 독재자들의 예금을 찾는 데 필요한 충분조건은 못된다.
최종적으로 독재자가 빼돌린 예금이 국내에서 저지른 범죄에서 비롯된 것임을 입증해 보여야 한다.
이를 이유로 스위스정부는 마누엘 노리에가 전파나마 지도자의 문제예금 46만달러를 내놓기 거부하고 있다. <정명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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