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정권 말에 내놓은 2단계 균형발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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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부가 2단계 국가 균형발전 대책을 발표했다. 지방이전 기업과 인력에 대해 법인세와 건강보험료를 대폭 깎아주는 게 주요 내용이다. 이는 각종 감면을 줄이기로 한 조세정책의 근간을 훼손하는 데다 위헌 소지도 있지만 밀어붙인 것이다. 헌법은 동일한 소득에 대해 동일한 세금을 내는 조세평등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정권 말기에 ‘아니면 말고’ 식의 대선 공약 같은 대책을 발표한 셈이다.

이 정부 내내 균형발전을 추진했지만 지방이 살기 좋아졌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외려 60조원이 넘는 토지 보상비가 부동산 시장의 불쏘시개 역할을 했고, 수도권과 지방 간 갈등만 커졌다. 오죽하면 한국경제학회가 “균형발전은 광복 이후 최대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이라고 했겠는가. 1단계 균형발전부터 재검토해야 하는 마당에 2단계로 판을 키우는 정부의 오기와 뱃심이 놀랍다.

우선 균형이라는 이름 아래 수도권과 지방을 나누는 게 시대착오적이다. 더 큰 문제는 돈이다. 그동안 벌여 놓은 대형 사업만 해도 농촌대책 119조원, 국방개혁 67조원, 1단계 균형발전 66조원 등 끝이 없다. 정부는 이번 대책으로 세수가 얼마나 줄어들지 가늠조차 못 하고 있다. 재정에서 추가로 나가야 할 돈도 내년에만 약 1조원이라고 한다. 모두 국민 부담이다. 몇 개월 남지 않은 정부가 국민 호주머니를 털면서 생색을 내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우리에게 남은 것은 사상 최대 규모의 국가채무(지난해 말 282조원)이고, 유류세를 깎아 달래도 돈이 없어 곤란하다는 정부의 답변뿐이다.

2단계 균형발전은 지난 대선 때 행정수도 공약으로 재미를 본 정부가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카드 아닌가. 지난봄 노무현 대통령은 “2단계 균형발전을 대선 판에 국회에 내놓고 밀어붙여 보자”며 의도를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국민을 분열시키는 포퓰리즘 정책이 더 이상 안 통한다는 점을 모르는 것 같다. 정부는 일을 벌이기보다 수습하는 데 전념하라. 국회는 대선 표를 의식해 우물쭈물하지 말고, 균형발전 관련법 개정을 거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