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금융 전문 변호사 홍선경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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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뭔가 한국에 도움이 될만한 경험과 지식을 쌓아가지고 돌아오겠다며 미국유학길에 오른지 25년만에 서울에 온 셈입니다. 과연 요즘같은 국제화사회에서 국제변호사가 할 일은 무궁무진하군요.』
지난해말 귀국해 아시아 최대의 법률사무소인「김&장 법률사무소」에서 국제금융 전문변호사로 일하는 홍선경씨(47). 국제하·개방화와 함께 국제계약법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지만, 오랜 세월을 동질적 사회에서 살아온 한국인들은 계약에 철저하지 못해 엉뚱한 손해를 보는 경우가 너무 많다고 말한다.
『선진국에서는 계약서를 만들 때 모든 상황에 대비해 1백페이지가 넘는 계약서를 작성하는 예가 흔한데 비해, 한국인들의 계약서를 보면 아찔할 정도로 짧은 경우가 많습니다. 예컨대 금융대출때 미국에서는 지불불능사태에 대비한 계약서만 해도 수십페이지에 이르지만 한국인들은「기분 나쁘게 왜 그런 상황을 가정하느냐」는 식이거든요.』
이같은 문화적 차이때문에 철저한 계약서를 준비하지 못한 측이 보게되는 피해는 대체로 천문학적 규모여서 늘 안타깝다고 한다.
경기여중 수석입학, 대학입시 자격시험 전국 여자수석, 서울대 영문과 수석졸업 등 잇단「수석」을 기록한 홍씨가 미국유학을 떠난 것은 지난 68년. 미국 대통령부인이 된 힐러리 클린턴이 학생회장을 맡아 월남전 반대데모에 열을 올리던 웰슬리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한뒤 하버드대에서 사회학 박사과정을 마쳤다.
그후 하버드 동창생들과「월드 타임스」란 신문을 창간했으며, 다시 예일대법대에 입학해 클린턴과 동창생이 됐는데 당시 예일대 동기생의 30%이상이 여성.
캘리포니아주정부의 변호사 자격시험을 통과한뒤 1천5백여명의 유수한 변호사들이 함께 일하는 대규모 국제법률사무소 「존스 데이」에서 8년간 경험을 갈고 닦아 금의환향한 홍씨가 해야할 일은 늘 태산같다. 오전9시부터 일하기 시작해 밤10시를 넘기기 일쑤. 2개국 이상의 기업이 관여하는 법률문제를 자문해야 하는 국제변호사로서 맡는 사건마다 규모가 엄청나고 중요해서 퇴근해봤자 밤잠을 설쳐야할 정도의 무거운 책임감에서 벗어나기 힘들다고 털어놓는다.
아직 독신인 홍씨 자신은 긍지와 의욕으로 견뎌내고 있지만, 결혼한 여성의 경우는 철저한 탁아서비스 및 남편과 아내의 역할분담이 따라야 계속 해낼 수 있는 일이라고.
『법조계라고 해서 성차별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자격증을 따기가 어려운 분야일수록 일단 그 자격을 따고 나면 성차별도 비교적 적은 편이지요. 국제화·개방화가 점점 가속될 수밖에 없는만큼 국제변호사의 역할과 수요도 점점 커질겁니다. 이런 일에 필수적인 분석적 두뇌는 여성이 남성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데다 여성 특유의 정확성이 더욱 돋보일 수 있는 전문직종이 아닐까 싶습니다.』<김경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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