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사정한파/바짝 움츠러든 정·관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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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YS의 밀어붙이기」 증폭 걱정 민자/의원 수사여부 탐문하며 긴장 민주/부처선 인·허가 등 대민업무 공무원들 전전긍긍
새정부의 사정·개혁의지가 적지않은 「상처」에도 불구하고 날이 갈수록 굳어지는 기색이자 여야 정당은 물론 관가도 겁먹은 표정을 풀지 못하고 있다. 개혁의 주체였던 민자당의 최형우사무총장이 제풀에 쓰러지고 민주당의 이동근의원이 공갈혐의로 구속되면서 정치권은 너나 할것없이 머리 위를 나는 개혁 칼날에 한기를 느끼는 눈치다.
그러나 관가의 표정은 이른바 「음지」와 「양지」의 차이가 커 묘한 대조를 이룬다.
○…민자당 의원들의 긴장도는 날이 갈수록 더해가는 느낌이다. 민정·공화계는 더 추위를 타는 것 같고 재산공개때만 해도 비교적 여유있는 표정을 지었던 민주계도 얼굴색이 달라지고 있다.
○“5·6공 내사” 긴장
민정·공화계는 지난 14일 최형우 전 사무총장이 아들의 전문대 입시 부정입학 사건으로 퇴진할 때만 해도 향후 형편이 좀 나아질 것으로 예상했던 것 같다. 즉 개혁세력도 앞으로 몸조심에 신경쓸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대통령이 『돌부리에 개의치 않는다. 목표는 변함없다』고 의지를 표명하자 이들 두 계파는 몸이 다시 굳어졌다.
민주당 이동근의원 구속도 심상찮은 일인데다 5,6공인물 내사설까지 겹쳐 움츠러들대로 움츠러들고 있다. 이들은 이 의원 구속을 민주당처럼 단순히 최 의원 파문 희석용으로 보지 않고 비리 혐의자에 대한 무차별적인 응징의 신호탄이 아닌가 걱정하는 눈치다.
청와대 등이 의원 내사설을 부인해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민정계의 한 의원은 『불도저같은 최 전 총장이 물러나면 서서히 개혁의 템포가 조절될줄 알았는데 이런 기대를 간파했는지 YS는 여유를 주지않고 물아붙이고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민정계의원은 『최전 총장 쇼크와 관련,수구세력 반격설이 떠돌고 있는 것도 우리에게 불리하다. 만일 YS가 이 설을 믿는다면 그의 성격으로 보아 정국의 앞날은 뻔하지 않느냐』고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민주계쪽엔 공멸의식이 싹트고 있다. 수구반격이 실제 있다면 최 전 총장 다음의 목표물은 누구냐며 불안감에 떨고 있다. 게다가 YS가 반발세력들을 응징하기 위해 더욱 밀어붙이면 불안한 상황은 더욱 증폭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때문에 계파에 관계없이 『요즘 우리도 저절로 과거에 무슨 짓을 했나 돌아보게 된다』 『개혁이 지나치게 옛날 일을 까뒤집는 쪽으로만 폭좁게 추진된다면 우리 당 내부의 분열은 그만큼 커질 수 밖에 없다』는 우려도 없지 않다.
○강경발언만 난무
○…민주당은 이동근의원 구속이 정치적 탄압이라며 겉으로는 핏대를 세우고 있지만 의원 개개인은 검찰의 정치권 수사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내심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 의원에 대한 구속강행을 사정 칼날이 야당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이면서 너나없이 자기 주위를 다시한번 되돌아보는 모습들이다. 재산공개때 의혹을 샀거나 비리에 관련이 있는 것으로 거론됐던 몇몇 의원들은 여권에 수사여부를 탐문하며 정보교환에 여념이 없다.
민주당은 16일 최고위원회의를 연데 이어 17일 최고위원회의와 의원총회 등을 잇따라 열어 이 의원 사건에 대한 대응방침과 향후 정국대처방안 등을 논의했으나 뾰족한 대안없이 강경발언만 난무,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당의 고민을 노출시켰다.
의원총회에선 이 의원 구속이 『최형우 전 총장파문으로 실추된 여권의 도덕성을 상쇄시키려는 맞불작전』(한광옥최고위원)이라고 보고 『포철비자금 등 세무조사결과 전모도 밝혀야 된다』(이기택대표),『임시국회를 소집하여 석방결의안을 제출하고 사법적으로 공갈죄가 성립되는지 검토하자』(박상천의원) 등 강도높은 정치공세를 펼쳤다.
○…사정·개혁의 강풍이 몰아치면서 요즘 관가에서는 『인간만사 세옹지마』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인·허가 등 대민업무가 많아서 공무원들 사이에 선망의 대상이었던 부처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과 달리 그동안 음지였던 부처의 공직자들은 비교적 느긋한 여유를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근본해결책 없다”
더구나 김 대통령의 말 속에서 새정부의 개혁이 상당기간 강도높게 지속될 것으로 감지되자 공직사회의 대조적인 모습이 더욱 역력해지는 추세.
대민업무가 거의 없는 총무처의 한 간부는 『고인 물을 휘저었다고 맑아지는 것은 아니다』고 최근 경원대입시부정과 관련해 단행된 교육부의 자리바꿈식 인사에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이처럼 일부 부처에서는 새정부의 개혁·사정작업이 공직사회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쳐오지 않는다고 불만스러워 하면서도 『수십년간 누적된 문제가 쉽게 해결될 수 있겠느냐』고 다소 체념섞인 모습을 보여주는 공직자들도 눈에 띈다.<이재학·박영수·이상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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