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동물원 정겨운 노랫말로 옛추억 떠올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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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동물원」이라는 그룹은 아마추어적인 상큼함이 있을 뿐이라고 간단히 치부하기엔 생명력이 길다.
대학생으로서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한 그들이 어엿한 직장인이 된 현재에도 매년 1장의 음반을 발표해오다 5번째 앨범을 2장짜리로 묶어낼 수 있게 한 「동물원」의 힘은 잔잔한 노래의 즐거움과 진솔한 대화 같은 노랫말의 순수함에서 나온다.
야외 소풍이나 교정에서 통키타 하나만으로 즐겨 부를 수 있는 노래들을 제공하고 있는 「동물원」은 종종 포크 록이란 미국 60년대의 음악을 연상시켜 연주· 편곡의 단순함보다 노랫말의 정겨움 때문에 한국가요계의 외곽에서 빚나고 있다.
S대 의대병원 전문의로 근무하고 있는「동물원」의 리더 김창기(30)는 가사에 일상어와 고유명사를 담백하게 등장시키는 재능을 발휘하고 있다.
『어렸을 때 우리들이 좋아했던 우주 소년 아톰, 마루치 아라치… . 함께 뛰놀던 골목길 「공 좀 꺼내주세요」라고 외치며 조마조마했었던… 고등학교 다닐 땐 라디오와 함께 살았지, 성문종합영어보다 비틀즈가 좋았지, 후 「아니벌써!」노래들을 들으며 우리도 언젠가는 그렇게 노래하고 싶었지』 (『우리가 세상에 길들기 시작한 후부터』 중).
『학교 앞 동시 상영관에서…』 『폴링 인 러브』『뽕』『인디아나 존스』…. 화면엔 비가 내렸고 가끔은 구름도 꼈었지…4집 『명화극장에서』 중)
『내일 아침이 오면』 이란 곡에선 느닷없이 『애국가』의 끝부분이 나오고 듣기 괴로운 잡음소리가 나온다. 불면증과 외로움, 그리움으로 종영 시간까지 TV앞에 흘로 남아있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충분치 철이 들었을 나이인 30대에 접어든 그룹「동물원」이 부르는 『우리가 세상에 길들기 시작한 후부터』 라는 곡은 싱어송 라이터 송시현(『꿈결같은 세상』) 처럼 어린시절의 순수함과 소박함을 그리워하고 있다.
「동물원」의 멤버들처럼 70년에 중·고교를 다니고 암울한 80년대 초 대학을 다녀 이제는 기성세대로 편입되어 가는 세대들에겐 새록새록 와 닿는 말들이 앨범 전체에 담겨있다.
테크너 랩 댄스 음악 흉내내기가 팽배해 있는 젊은 음악인들 사이에서「동물원」은 최소화한 악기 편성과 현란한 음향 합성을 배제한 말끔한 편곡을 통해 예전 대중음악의 소박함을 지향하고 있다.
TV쇼에 출연하고 각종행사에서 초청 가수로서 등장하는 연예인이 되어야만 가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인으로서 같은 세대가 즐길 수 있는 음악을 제시하는 몫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채규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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