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RIReport] 한·미 FTA, 제조업 생산성 최고 1.4% 높일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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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최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과 관련해 시장개방이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세간의 관심도가 높다. 특히 한.미 FTA가 최근 지속되고 있는 경제성장 둔화 현상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시장개방이 어떠한 경로를 통해 우리나라의 새로운 성장엔진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엄밀한 분석의 필요성이 각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경제학 문헌에서는 지속성장의 핵심적인 요소로 기술혁신, 생산의 효율성 향상 및 기타 제도개선 등을 통한 생산성 제고를 들고 있다. 그렇다면 실제 시장개방은 어떠한 경로를 통해 우리 경제의 생산성 제고에 기여하게 될까.

일각에서는 우리나라가 과거 수출지향형 성장전략을 통해 고도성장을 구가하였으며, 앞으로도 수출 확대가 우리의 가장 중요한 성장엔진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난 수년간 수출 증가율이 지속적으로 두 자리 숫자 이상의 호조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률이 오히려 하락하고 있는 최근의 상황을 고려해 보면, 이러한 논리에는 상당한 공허감이 존재한다. 국내외 연구결과에서도 기업 규모가 크고 생산성이 높은 기업들이 주로 수출.직접투자 등을 통해 해외시장에 진출하는 반면 실제 수출활동을 통해 얻어지는 생산성 제고 효과는 낮은 것으로 나타난다.

이에 최근 경제학계에서는 외국인 직접투자와 함께 수입시장 개방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추세에 있다. 특히 수입시장의 개방은 국내시장에서의 경쟁을 촉진함으로써 개별 기업으로 하여금 생산.경영의 비효율성을 줄이고 혁신역량을 배양시키는 유인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무역장벽이 외부의 경쟁압력으로부터 국내시장을 보호하면서 새로운 인프라나 생산기법의 개발에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는 유치산업 보호론 측면에서 개방정책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시장개방의 효과성 여부는 선험적 판단보다는 체계적인 실증분석 차원에서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시장개방과 관련된 주요 정책변수의 하나인 수입관세의 변화가 우리나라 개별 사업체의 총요소생산성에 미치는 영향을 실증 분석해 보았다.(총요소생산성은 노동.자본.중간재 등 생산에 들어가는 모든 요소를 감안한 생산성으로서, 총요소생산성의 변화를 보면 기술혁신, 생산과정의 효율성 제고 효과 등을 파악할 수 있다.)

1993~2003년 고용인원 5인 이상인 총 15만여 개의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수입관세 장벽이 낮아질수록 개별 사업체의 생산성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입관세율이 1%포인트 하락할 경우 개별 사업체의 생산성은 평균적으로 1.52% 정도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기업 규모별로는 고용인원 10인 미만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업체에서 관세율 인하가 생산성을 제고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50인 이상 100인 미만 사업체의 경우 관세율 1%포인트 하락 시 생산성이 2.2% 정도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나 가장 높은 생산성 제고 효과를 보였다.

또 분석 결과는 관세율 인하가 고용은 늘리고 대신 수익성은 낮추는 효과가 있음을 보여준다. 10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체와 10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체는 관세율 1%포인트 하락 시 각각 0.7%와 0.8% 수준의 고용 증가 효과가 나타내는 반면 기업 수익성의 경우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체들과 300인 이상 사업체에서 관세 하락으로 인한 수익성 저하 현상이 발생했다.

이 같은 결과는 시장개방이 수익성에 압박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기업 스스로가 생산.경영의 비효율성을 줄이고 혁신역량을 배양시키는 유인을 발생시키며, 궁극적으로는 고용의 창출에도 기여함을 시사한다.

한편 관세 인하를 통한 기업의 생산성 증가 효과는 관세를 인하한 다음 해에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고 있어 사업체들이 비교적 단기간에 관세 변화에 적응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반면 관세인하의 고용창출 효과가 나타나는 데는 비교적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 분석 결과를 토대로 한.미 FTA 체결의 생산성 제고 효과를 계산해 보면 최소 0.9~1.4% 수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제조업의 평균 관세율이 4~6%포인트 내외이고, 미국이 우리나라 제조업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5% 정도임을 감안하면 한.미 FTA를 통한 우리나라 평균 관세율 인하 폭은 0.6~0.9%포인트 수준일 것으로 예상된다. 관세율이 1%포인트 떨어질 때에 생산성이 1.5% 증가하므로 한.미 FTA는 결국 제조업체의 평균 생산성을 약 0.9~1.4% 증가시키는 효과를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시장개방은 관세율 인하와 그에 따른 경쟁압력 촉진을 통한 생산성 제고 효과 외에도 연구개발(R&D) 파급 효과, 산업 간 및 산업 내 자원배분의 효율화 등 여타 경로의 생산성 증대 효과를 가진다. 따라서 한.미 FTA 등 시장개방의 전반적인 생산성 제고 효과는 본고의 추정치보다 훨씬 클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개방화 정책이 생산성 제고를 통해 경제성장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관련 제도적 국내여건에 따라 시장개방정책의 경제적 효과가 달라지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2005년 세계은행 보고서도 개방정책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거시정책, 교역관련 인프라 및 제도 정비, 인적자본 투자, 법적 안정성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산업 경쟁력이 선진국 수준으로 수렴할수록 수출 확대보다는 국내 시장개방을 통한 생산성 제고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진다는 것이 학계의 지배적인 견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의 경우는 개발연대 이후 형성된 중상주의적 사고방식의 결과 수출을 통한 대외시장 확대는 선이고 국내시장의 개방은 악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팽배해 있는 실정이다. 한.미 FTA가 전문가를 비롯한 국민의 시장개방에 대한 대폭적인 인식 전환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이시욱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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