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첫 미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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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박상철<서울대의대 교수>
우리집 통금시간은 밤10시30분이다. 딸아이가 올봄대학에 들어가면서「계엄령」을 선포한 것이다.
『아빤 너무 보수적이에요.』딸은 눈을 살짝 흘기면서도 아빠의 통금조치에 순순히 따를 것임을 내비쳤다.
대학교수인 나는 젊은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고 자주대화도 나누기 때문에 비교적 젊은이들의 사고에 동조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런데도 딸아이의 눈에는 애비가「보수의 원천」쯤으로나 비춰지는 모양이다. 며칠 전 회식이 있어 술도 몇 잔 걸치고 그 통금시간에 집에 들어갔다. 그런데 여느 때처럼 현관에서 마중해야할 아들·딸 가운데 딸이 보이지 않았다.
『 애가 왜 늦는지 모르고 있나』공연히 아내에게 소리부터 질렀다.
『입학후 첫 미팅날이에요. 좀 늦는 모양이지요, 뭐.』
『미팅이고 뭐고 다 큰 말만한 여자애가 괘 이리 늦게 돌아다니는 거야.』
야단을 치변서도 입가엔 미소까지 띄게 되었다.
「내 딸이 별써 미팅도 하게 되었다니…바라던 남학생을 만났을까? 재미가 있으니 이렇게 늦었겠지.」나도 몰래 궁금해지고 응원해 주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잠시 나의 젊은 대학시절이 떠올랐다. 어쩌다 데이트하는 날이면 으레 후미진 다방구석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시간은 쏜살같이 날아가 버리고, 벌써 헤어져야 할 시간이구나 하는 아쉬움만 남던 순간들.
딸아이도 그러할까. 한참생각에 잠겨 있을때 딸아이가 들어왔다.
『죄송해요. 다시는 늦지 않겠어요.』
미안해하는 모습에 마음은 봄눈 녹듯 풀렸지만 그래도 약속 위반에 대해 한바탕 야단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는 궁금한 마음에 슬그머니 딸에게 다가갔다.
『왜 이리 늦었냐.』
『그룹미팅을 했는데 노래방에 갔어요.』
『그래, 상대는 마음에 들던?』
『아빠, 성공적 이었어요!』
딸의 밝은 웃음소리가 집안을 채워갔다. 행운이 있을 지어라. 딸의 첫 미팅이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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