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의 원상회복/김영배(중앙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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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기득권층을 강타했던 재산공개의 태풍이 한차례 지나갔다. 정부도,국회도 그 뒷마무리를 서둘고 있어 재산공개의 파문은 일단 수그러질 모양이다. 4백50명에 이르는 장·차관,여야 국회의원 등의 재산공개를 통해 우리 사회의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고위공직자들의 부정하고 탈법적인 축재상태가 낱낱이 공개되고 비판될 때 국민들은 그동안 누적된 권력형 부패의 붕괴에 속시원해 했다. 국회의장이 사직하고,의원들 수명이 의원직을 내놓고,구속된 의원까지도 나왔다.
○재산공개 뒤처리 미진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풍 일과후의 뒷맛은 반드시 선명치만은 않다. 그것은 재산공개로 드러난 문제를 초법적인 여론재판으로 처리해가는 과정에서 석연찮은 정치적인 고려가 개입된 인상을 주는데다가 이미 저질러진 부정과 탈법에 대한 뒤처리의 전망이 뚜렷하지가 못한 때문일 것이다. 파헤쳐진 그린벨트가 그대로 방치되고,위장전입해 사들인 절대농지가 그대로 묵인되어서는 안될 것인다. 공직에서 물러난 대가로 그들의 축재가 묵인된다면 그것은 정치적인 흥정밖에 되지 못한다.
현직에 있는 고위공직자나 국회의원의 부정시비가 여전한 재산들은 또 어떻게 처리되어야 하느냐는 문제로 남는다. 직위에서 물러날 정도로 「현저한」 비리는 아닐지라도 그 과정에서나 규모에서 문제성이 있는 공직자들이 여러명 있다는 것은 이제 누구나 알고 있다. 너무 샅샅이 캐다보면 거의 모두 물러날 판이어서 그대로 덮었다면 그 후속이 있어야 마땅할 것이다.
6공때도 비리를 저지른 공직자는 말썽이 폭로될만 하면 자리에서 쫓겨났다. 그러면 그것으로 모든게 어물쩍 넘어가고 말았다. 그 바람에 공직자들이 한건 하다가 운수좋으면 그대로 넘어가는 것이고,운수불길해서 들통이 나는 날엔 옷벗고 나가면 그만이었다. 부정과 비리가 난무하지 않을 수 없었던 셈이다. 이번에도 또 그렇게 넘어가서는 안된다.
○물러만 가면 그만인가
교묘하게 재산을 은닉해 놓은 바람에 혐의를 받으면서도 비판의 대상에서 빠져나간 사람도 있다. 명백한 혐의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치적」인 배려로 당초부터 제외된 듯한 사람도 있다. 때문에 축재과정이 너무 치사해서 남이 얼굴이 붉어질 지경인 사람조차도 『왜 나만』하고 불평하게 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재산공개의 과정이나 처리가 제도화된 법적 뒷받침없이 여론재판의 형식으로 진행된데 그 가장 큰 원인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래서 공직자윤리법에 재산공개의 범위를 넓히고,매년 실사하고,퇴직후에도 공개토록 하는 등의 방법론이 나오고 있다. 물론 개혁의 영속화를 위해서는 법적인 뒷받침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심각한 문제는 부정과 부패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너무 안이한데 있지 않나 싶다. 일본에서는 정계의 대부라던 가네마루(금환) 전자민당부총재가 축재혐의로 구속되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전직총리도,정당당수도 구속되고 물러나는 판이다. 브라질에서는 수백만달러의 독직혐의에 현직 대통령이 탄핵되기까지 했다. 그런데 우리는 부정이 심한 혐의가 있는 사람은 물러나면 그 뿐이다. 너무 치사한 투기를 한 국회의원 한 사람이 사법처리의 대상이 되고 있을 뿐이다.
부패가 너무 구조화되어서,기득권층의 부정이 너무 만성화되어서,그것을 모두 한꺼번에 뜯어 고치다가는 나라 전체가 뒤집어질 것 같아서 못할 수도 있다. 개혁을 너무 지나치게 밀고나가면 사회 전체의 안정이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에 점진적으로 개선을 시도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가지의 원칙은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적어도 공직에 있는한,그리고 사회지도급의 책임있는 자리에 있는한,부정과 탈법의 원상회복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드러난 것이든,아직 감춰진 것이든 간에 말이다.
○정치적 고려 배제해야
신정부의 지금까지의 성공은 도덕성 문제를 제대로 제기했기 때문이다. 신정부의 경제정책조차도 다분히 도덕적이다. 그것은 국민의 고통분담이라는 기조위에서 성공을 담보받으려 하고 있다. 그렇다면 적어도 신정부는 재산공개의 뒷마무리에서 새로운 막후실세의 입김이니,정치적인 고려니 하는 요소들이 모두 배제될 수 있는 엄정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그들의 진정한 도덕성을 보장받아야 할 것이다.<통일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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