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국무회의/「고무도장」 탈피 심의·토론 활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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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관계없는 「비서진」 참석 봉쇄/타부안에 시비… 부결도 늘어
국무회의가 달라졌다.
헌법에 따르면 국무회의는 국가의 중요정책을 전정부적 차원에서 충분히 심의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지금까지의 국무회의는 청와대의 의중을 살펴 그에 거슬리지 않는 의결과정을 요식적으로 해오는데 그쳤다.
국무회의에 청와대수석비서관 등이 배석해 발언하면서 수시로 청와대의 입장을 전달해 왔다. 권력이 청와대에 집중돼 있던 권위주의 정권 아래에서 중요 안건이 있을때마다 청와대의 관련 수석비서관이 참석함으로써 국무회의에서의 실질적인 논의는 사실상 기대하기 어려웠다.
김영삼대통령은 지난 2월27일 청와대에서 처음 열린 새정부의 첫 국무회의에서 배석자의 범위를 줄였다. 감사원장·안기부장·대통령경호실장 등 국무회의의 성격상 활발한 논의에 장애가 될 소지가 있는 인물들의 회의참석을 금지시킨 것이다. 아울러 국무회의의 활성화를 위해 청와대 관련비서관들의 참석도 사실상 봉쇄했다.
새정부가 들어선이래 1일의 국무회의까지 포함해 청와대 2회,임시 2회,정례 5회 등 아홉차례의 국무회의가 있었다. 통계적으로 보면 우선 회의시간이 종전보다 30여분씩 늘었다. 안건이 없으면 30분정도 걸렸으나 이제는 최소 회의시간이 1시간 정도로 늘어났다. 따라서 지난달 29일의 임시국무회의부터 회의시작을 오전 8시로 한시간을 당겼다.
또 심의의결이 보류되는 안건이 회의마다 거의 한건씩 되고있다.
지난 25일 국무회의에서는 새해예산안 편성지침이 당정협의 미비로 심의가 미뤄졌고,1일의 회의에서는 국외유학에 관한 규정개정안건이 실무협의가 미진했다는 이유로 지난 국무회의에 이어 두번이나 보류됐다. 종전의 국무회의에서는 난상토론과 질문은 일종의 금기가 됐으며 타부처의 안건에 대해서는 모두 언급을 회피해 왔다고 한다.
진통하는 국무회의는 상상할수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새정부가 들어서면서 국무회의는 종래의 고무도장에서 탈피,실질적인 심의기능을 부활시켰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지난달 18일 국무회의에서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가 논의됐다. 한승주외무·권영해국방장관이 이와 관련해 보고했고,경제부처장관 등은 생필품의 사재기소동 등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언급하면서 자연스럽게 국민들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방안을 강구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지난달 25일 국무회의에서는 김덕룡 정무1장관이 이경식부총리가 제안한 새해 예산안 편성지침에 대해 『새정부는 과거와 달리 당정간에 중요문제를 긴밀히 협의하기로 약속했다. 그 약속을 어기는 것은 곤란하다』며 우선 당정협의부터 거칠 것을 요구했다.
이민섭문화체육부장관은 소비성예산이 많은 부처의 특성때문인지 기획원이 제출한 지침에서 투자우선순위를 재검토하겠다는 구절에 이의제기를 했으며 최인기내무차관은 『유류관련 세목을 목적세로 전환하는 것은 지방재정의 확립 등이 걸려 아직 내무부와의 협의가 충분치 않은 것』이라고 김 정무장관의 제동에 가세했다.
지난달 11일 국무회의에서 윗물맑기운동의 차원에서 국무위원들이 솔선하기로 한 8대실천과제는 난상토론을 거쳐 당초 실무자들이 입안한 것보다는 완화된 내용으로 채택형식도 결의가 아닌 「의견을 모으는 형태」로 바뀌었다.
국무회의가 이렇게 변화된 가장 큰 이유는 김 대통령의 자유로운 회의운영스타일과 국무회의의 실질화에 대한 의지가 반영됐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이재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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