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홍규(47.최가철물점 대표)씨는 스스로를 "쇠에 미쳤다"고 말하는 철물쟁이다. 열아홉 살에 서울 을지로 철물점에서 쇠를 만나면서부터 쇠붙이 얘기만 나오면 피가 끓는다는 그다.
쇠에 관한 것이라면 뭐든 모아온 그가 지난해 11월 서울 동숭동에 낸 박물관 이름도'쇳대'다. 열쇠의 사투리인 '쇳대'를 주제로 내걸고 3천여점이 넘는 쇠붙이를 모아놓았다.
"며칠 전에 미술사학자인 유홍준 교수가 '이건 여기 있어야 제격이지'라며 불 때는 아궁이 막는데 쓰는 화구 하나를 주셨는데 거죽에 '연료절약'이라고 써 있더라고요. 글씨가 서민체로 구수하니 생활미가 넘쳐요. 아는 이들이 이렇게 모아주는 쇠붙이에다 사들이는 것, 찾아다니는 것 해서 하루 종일 쇠만 만지고 살아도 돌아서면 또 쇠가 그리워요."
진열장을 빼곡 채운 세계 각국의 열쇠들이 주인을 반기는듯 반짝거린다. 화려한 치장으로 집안 살림을 지키는 안주인의 권위를 상징했던 열쇠패, 여러겹 나무틀을 차례로 열어야 마지막 함이 열리는 상자열쇠, 그 모양이 배꼽을 닮은 함박형 자물쇠, 나무로 만들어 빗장 같은 구실을 하는 아프리카 자물쇠, 공예품처럼 장식성이 두드러진 중세 유럽의 자물쇠, 기하학 문양이 아름다운 티베트의 자물쇠 등 그 생김생김이 볼수록 마음을 잡아끈다.
"자물쇠가 무엇을 잠근다는 기능과 함께 지킨다는 주술적 뜻이 겹쳐 있어요. 쓰임새에 혼까지 더한 물건이라 더 사랑합니다. 대장간에서 쓰던 모루며 집게 같은 물건들은 또 어떻고요. 수십년 노동의 땀으로 삭은 호미 한 자루에 한 인간의 일생이 스며 있다고 저는 봅니다."
최관장의 쇠타령은 쇠예찬으로 이어진다. 쇠야말로 '햄버거 세대'에게 '보릿고개 세대'의 삶을 피부로 느끼게 하는 생활사의 중심이라는 것이다.
"철물점에서 일할 때 쇠를 달구는 불꽃을 보면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의욕이 솟았어요. 담금질로 단단해지는 무쇠의 힘을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어요. 3월에 열 첫 기획전 주제를 대장간으로 잡은 까닭입니다. 따뜻하고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쇠맛을 본 사람은 평생 잊지 못하지요. 요즘 아이들에게 부족한 정서를 쇠맛으로 채워주렵니다."
쇳대박물관은 건물 외벽도 시뻘건 철판이다. 최관장은 "승효상씨가 설계한 이 작품(건물 설계도와 모형)이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됐다"고 자랑했다. 그는 "법정 스님이 '쇳대'라는 박물관 이름을 써 주셨고, 박정자.윤석화씨 같은 연극인들이 아끼던 애장품을 선뜻 내줄 때 박물관 일이 내 혼자 하는 게 아니구나 하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쇳대박물관' 탄생기는 어려운 현실에서 우리 동네 박물관 하나가 어떻게 태어났나를 보여주는 본보기다. 최관장은 "개인 박물관을 꿈꾸는 분들에게 희망을 주는 쇳대 구실을 하고 싶다"며 열쇠를 어루만졌다. 02-766-6494.
정재숙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ssk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