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35% "하루 1시간도 아빠 못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다정다감한 신세대 아버지들이 늘었는데도 아직도 아이들에게 아버지는 먼 존재다. 지난해 6월 케이블 채널 투니버스가 만 15세 이하 어린이 4천4백3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1천5백56명(35%)의 어린이가 "하루에 한시간도 아빠 얼굴을 못 본다"고 응답했다.

가정에서 멀어진 아버지들의 세태가 고스란히 드러난 결과다.

전문가들은 이런 '아버지의 부재(不在)'가 아이들의 가치관 형성에 장애가 될 우려가 크다고 지적한다.

박진생 신경정신과 원장은 "역할 모델이 없어 남자아이가 여성화되고 여자아이의 경우에는 이성에 대해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적대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또 "엄마들이 자녀양육을 전적으로 떠맡으면서 과중한 부담이 짜증스러워 부부 불화가 생길 수 있고 이 역시 자녀들의 정서에 악영향을 끼치는 환경이 된다"고 지적했다.

이런 부재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선 아버지들이 일과 가정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첫째다.

덕성여대 이옥(아동가족학과)교수는 "귀가 후 20~30분 짧은 시간이라도 적극적으로 아이들과 놀아주면 아버지의 시간적 부재를 상당부분 상쇄할 수 있다"고 말한다.

가정경영연구소 강학중 소장은 "회사에 다닐 때는 아이들과 일주일에 네번씩 저녁을 함께 먹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과의 약속은 점심이나 조찬모임으로 잡곤 했다"며 "일단 결심을 하고나니 불가능한 일도 아니더라"고 말한다. 강소장은 ㈜대교 대표이사를 맡고 있던 1997년 '가정에 충실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는 결단을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정시 퇴근이 눈치 보이는 기업문화와 2차, 3차로 이어지는 음주문화 속에서 성공을 향해 고전분투하고 있는 가장들에게 '가정으로 돌아가라'는 메시지는 비현실적인 경우도 많다.

이 때문에 91년 발족한 '좋은 아버지가 되려는 사람들의 모임'을 필두로 아버지 모임이 속속 등장했지만 활동이 지속적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형편이다.

'아버지의 전화' 정송 대표는 "부모교육에 오고 싶어도 생업에 쫓겨 못 오는 아빠들이 많다"며 "저녁 때 모임을 잡아봤지만 번번이 오후 8시에 만나 자정 가까이 교육을 한다는 것도 계속하기 힘든 일"이라고 말했다. 정대표는 "행복한 가정이 결국 생산성도 높인다는 자각을 사회 전체가 하고 가정과 직장을 양립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