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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kholic 채인택 런던취재기 #12] 대영박물관, 마르크스, 그리고 전격작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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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대영 박물관 걷기(British Museum Walk)’도 추천 작품입니다. 대영 박물관은 면적이 거의 5만4600㎥(약 1만6500평)이나 됩니다. 이 광활한 전시공간을 혼자서 어림잡기로 보다간 중요한 것도 제대로 챙기기 힘듭니다. 이집트ㆍ아시리아 같은 고대 유물에서 시작해 엘긴 백작이 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에서 떼왔다는 그 유명한 엘긴 마블을 비롯한 그리스 유물까지, 정말 끝없는 유물의 향연입니다. 이를 가져온 대영제국의 힘과 더불어 이를 잃은 사람들의 고통도 느껴지고요. 전세계를 망라한 이 광대한 유물을 골라서 보는 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게 좋겠죠. 설명도 듣고 걷기도 하고. 게다가 영국의 국립 박물관ㆍ미술관은 입장료가 없습니다. 입구에 몇 파운드라고 적혀 있는데 이는 요금이 아니고 이 정도 기부해달라는 호소문입니다. ‘이 곳을 계속 공짜로 두려면 기부를 하십시오’라는 표어가 재미있습니다.

대영 박물관 내부 모습

상설이 아닌 특별 걷기 관광도 있습니다. 올해 5월7일 오후 2시15분에는 시내 피카딜리 서커스 역 1번 출구 앞에서 모여 칼 마르크스의 런던에서의 족적을 살피는 걷기 투어가 있었습니다. 매년 마르크스의 생일인 5월5일에 투어가 열리지만 올해는 이날이 토요일이라 평일인 7일로 밀렸답니다. 마르크스 걷기 관광. 묘한 느낌입니다.
마르크스는 1849년 5월 영국 런던으로 이주해 지금은 시내 중심부(당시는 빈민가)인 소호의 딘 스트리트 28번지 등에서 살았으며, 1883년 3월14일 런던 북부에서 세상을 떠나 하이게이트 공동묘지에 묻혔습니다. 그는 대영박물관 부속 시설이던 대영도서관(지금은 다른 곳으로 옮겼습니다)에서 『자본론』을 썼습니다. 무료로 도서관을 이용했다고 하더군요. 런던에 잠시 망명했던 레닌도 이 도서관을 이용했고요.

2차대전 당시 독일의 폭격을 당한 현장을 찾아보는 ‘전격작전(The Blitz)’이란 걷기 관광 코스도 있습니다. 매주 목요일 오후 2시15분 세인트 폴 사원 앞에서 시작합니다. 당시 이 사원을 배경으로 런던이 공습으로 불타는 사진은 2차대전 당시의 영국이 당한 고통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남아있습니다. 독일의 V2 로켓이 떨어진 곳을 살펴보고, 당시 피해로 앞과 뒷부분 색깔이 서로 달라진 건물 등을 볼 수도 있습니다.

참, 올해 8월27일에는 다이애나비 추모 걷기 대회가 열린다고 합니다. 다이애나비는 1961년 7월1일에 태어나 1997년 8월31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올해가 10주년입니다. 이미 추모 콘서트가 열렸지요. 걷기도 빼놓을 수 없는 추모 행사겠지요.

이를 우리나라에 적용해 봅시다. 서울의 역사 걷기 관광. 5.16 쿠데타의 흔적을 찾아보는 것은 어떤가요? 박정희의 신혼집이 있었다는 중구 어딘가에서, 그가 서울로 진입한 길. 쿠데타 발발 소식을 들은 윤보선 대통령이 갔다는 수도원 등등. 10.26의 흔적을 살피는 걷기 관광도 가능하겠군요. 궁정도 안가 터, 지금은 한옥 마을이 된 수방사터 등등. 6월 항쟁의 현장을 하나하나 찾아보는 것도 괜찮겠네요. 명동 성당에서 시작해 관훈동인가 인사동인가에 있던 '오늘은 기쁜 날, 차값 무료'라고 붙인 다방 자리까지 가보는 걷기도 괜찮고요. 광주에서 그날을 되새기는 추모 역사 안내 걷기를 하는 것도 괜찮겠군요. 구체적인 현장을 찾아 그곳에서 벌어진 일을 당시 시민군이 직접 이야기를 해주는 것 만큼 생생한 역사 교육이 있을까요.

채인택 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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