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 "오늘 의장성명 나올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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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연내 핵 불능화와 핵 프로그램 목록 신고를 하겠다는 의지를 보임에 따라 한반도 비핵화의 전망이 밝아졌다. 한국 수석대표인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18일 오후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6자회담 수석대표회의 뒤 "북측이 전향적인 자세로 나왔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핵 프로그램 신고와 핵 불능화 단계는 아직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라 무슨 장애물이 있을지 예상하기 어렵다"고 말할 때와 대조적인 표정이었다. 한.미는 이번 회담의 목표를 ▶고농축우라늄(HEU) 등 핵 프로그램 목록 신고 ▶불능화 완료 시기에 집중시켰다. 북측의 자세 변화는 비핵화와 대북 적대시 정책을 놓고 북.미 간에 빅딜이 이뤄졌음을 뜻한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외교 소식통은 "북측은 북.미 관계정상화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연락사무소 수준의 대화 채널을 상설화하는 방안을 요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은 영변 원자로 폐쇄에 착수하면서 테러지원국 명단 해제와 적성국교역법 적용 종료를 불능화의 선결 과제로 제시했다.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차관보도 낙관론을 펼쳤다. 그는 "실질적인 논의를 한 만큼 내일 오후 의장성명을 낼 수 있을 것 같다. 북한과 좋은 논의를 했으며 중유 제공 문제 등을 협의했다"고 강조했다.

외교 전문가들은 지난달 21~22일 힐 차관보의 평양 방문과 17일 베이징에서의 북.미 회담을 통해 양측이 대북 제재 해제의 방향과 속도를 합의했다고 관측한다. 정부 당국자는 "미 행정부가 의회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적성국교역법 문제보다 테러지원국 명단 해제가 먼저 추진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요컨대 불능화 완료를 전후해 테러지원국 명단 해제를 약속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비핵화 진전 여부에 따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같은 고위급 인사가 북한을 방문할 수도 있다.

이날 회담장 주변에선 낙관론이 우세했다. 전날 북.미 양자 회담이 장소를 바꿔 세 차례나 열릴 만큼 양측의 협상 의지가 돋보였기 때문이다. 이날 1시간30분간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열린 수석대표회의에선 ▶불능화와 목록신고 이행문제 ▶6자 외교장관회담 ▶5개 실무그룹 회의 일정을 논의했다고 한다.

회의에서 각국 대표들은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 해결 과정에서 각국이 취한 노력을 평가했다. 힐 차관보는 "BDA 문제를 통해 작은 기술적인 문제도 대세에 지장을 끼친다는 교훈을 얻었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은 95만t의 중유 또는 에너지를 어떻게 제공할 것이냐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2.13 합의에선 북한이 불능화를 하면 5개국이 중유 95만t 상당의 에너지를 제공한다고 약속했다.

베이징=정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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