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사냥(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요즘 공직사회에서는 정말 「밤새 안녕하시냐」는 인사가 실감나게 됐다. 조각하자마자 장관급 공직자들이 옷을 벗기 시작하더니 요즘은 연일 한 두명의 국회의원이 여론재판의 화살을 맞아 나동그라지는 모습을 보게 된다. 한편으로는 시원하다고 하겠지만 마녀사냥식 여론재판에 이래도 되는가 하는 불안감도 적지 않다.
그동안 공직자들의 부조리 행태가 너무도 기기묘묘해 분노를 금할 수 없었지만 이제 조금 정신을 차리고 보면 매번 백성이란 남이 다 해먹은 다음 허공에 대고 화내고 분풀이만 하는게 아닌가하는 자책도 든다. 5·16당시부터 지금까지 쿠데타든 혁명이든 정권을 새롭게 잡았다하면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한풀이굿을 한번씩은 했다. 깡패들을 잡아 광화문 네거리 조리돌림을 시켰고,부정축재자 명단을 공개하고 재산헌납을 강요했으며,이들을 모든 공직에서 추방하기도 했다.
백성들이 박수치고 흥분하며 이런 마녀사냥을 구경하다보면 추방당한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듯 버젓이 제자리를 다시 잡고 추상같던 재판관들이 이번엔 다시 바뀐 세상의 범법자가 되어있는 허망한 꼴을 보며 살아왔다.
원래 서양에는 마녀가 많지만 우리네 민속 신앙이나 주술속에는 서양식 개념의 마녀가 없다. 서양의 마녀는 중세 기독교세계 이후에는 기독교세계관을 해치는 이교도의 대명사로 고정되어 버린다. 기독교 세력과 규범을 허물어뜨리는 존재로서 마녀는 추방과 화형의 대상이 되고 이 마녀사냥을 통해 한 사회는 기존의 규범과 질서를 재확인하는 전기로 삼았다. 일종의 한풀이고 한 사회나 공동체의 규범과 윤리를 재조정하는 희생양으로서 마녀를 동원하거나 조작까지 했다. 적어도 군사문화가 판치는 시절까지는 마녀사냥식으로 여론조작이 가능했을 것이다.
우리는 이번 공직자들의 재산공개파동을 보면서 이젠 종래의 한풀이나,또는 정치적 파워게임의 일부로 시작되고 끝나는 마녀사냥이 되어서는 결코 안된다고 본다. 공직을 기화로 축재할 수 없다는 공직자 윤리를 정착시키는데 주력해야 한다. 엄정한 실사와 공직자윤리법의 실천을 통해 같은 잘못이 되풀이 되지않도록 하는데 이번 재산 공개의 목표와 방향이 설정돼야 할 것이다. 몇몇 국회의원들을 속죄양으로 쫓아내고 서둘러 이 파동을 봉합해 버린다면 마녀사냥이라는 비난만 남게 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