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편제」판소리의 정한이 "흠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임권택감독이 판소리영화 『서편제』를 완성했다.지난해 9월 여름의 풍광이 남아있던 남도의 끝 해남촬영을 시작으로 꼬박 6개월이 걸렸다. 최근수차례 열린 시사회의 분위기는 특별했다. 여자들은 눈물을 흘렸고 남자들도 슬그머니 눈시울을 훔쳤다. 그리고 박수를 쳤다.
그 박수는 흐르는 것과 떠도는 것, 그리고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깊은 슬픔의 공감이었다.
관객들은 한국인의 정서속에 담져있는 원형질의 한 부분인 한을 영화속의 인물들과 함께느꼈고 함께 풀어냈다.
일들은 우리의 창이 때로는 계면조로, 때로는 신명나게 삶의 애환과 공명하는 우리 소리의 슬픈 아름다움에 눈을 떴다고 했다.
『서편제』는 임권택영화의 새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된다.
그것은 그가 추구해온 주제인 인본주의가 이전의 작품에서 노출시켰던 관념의 찌꺼기를 『서편제』에 와서 비로소 털어내고 한국인의 속살에 다다른 경지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서편제』는 이청준씨의 연작소실 『남도사람』 중 「서편제」와 「소리의 빛」에서 줄거리를 따왔다.
소리품을 팔아 사는 떠돌이소리꾼 유봉(김명곤분) 과 수양딸 송화 (오정해분), 그리고 의붓아들 동호(김규철분)일가의 소리따라 여울져 흐르는 가족사를 담고있다.
임감독은 촬영에 들어가기전『남도의 아름다운 자연을 떠도는 사람들의 한이 어떻게 판소리에 녹아들어 해한과 구원의 차원으로 승화되는가에 연출초점을 맞추겠다』고 했었다. 지금 그는 결과에 『매우 만족한다』고 말했다.
의붓오누이의 남모를 정한관계에 대한 묘사가 부족하지않느냐는등의 지적에 대해서는『소리를 살리기위해 멜러적 요소를 가능한 모두 배제했다』고 설명했다.
밭언덕을 돌아 내려오며 세사람이 어울려 『진도아리랑』을 부르는 5분간의 긴 고정장면, 득음을 위해 딸을 장님으로 만든 아비가 딸을 이끌고 창 『이산 저산』 을 부르며 논길·산길을 걸을때 4계절이 바뀌는 장면은 잔잔하면서도 속깊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긴 이별 끝에 재회한 오누이가 아비를 그리며 『심청가』로 어울리는 장면은 판소리의 처연하고도 동시에 강렬한, 한으로 한을 씻어내는 우리 소리의 깊은 뜻을 보여준다.
명창 박초월을 사사한 김명곤과 김소희에게서 『춘향가』를 전수받은 오정해는 물만난 고기처럼 연기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정일성촬영감독의 안정된 카메라는 남도의 사계를 화면에 수놓고 있다. 김수철씨의 대금·소금을 이용한 주제곡도 떠도는 사람들의 심정을 구슬프게 표현하고 있다.
『서편제』는 몇가지 단점, 예컨대 세트의 부실등이 눈에 띄지만 그것을 충분히 덮을만큼 우리의 소리와 우리의 영상이 조화를 이룬 영화다. <이헌익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