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산식 기용 이젠 그만/공기업체장 인사도 달라져야(기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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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인사개혁 해야 경영개혁 가능해져/“학식과 덕망”만으론 생산성 못높여
신정부의 대규모 물갈이 인사발표를 보면서 많은 국민들은 대통령의 대권이 과연 대권이구나 하고 감탄해 하고 있는 요즘이다.
국무총리와 장·차권은 물론 감사원장·안기부장 및 육군참모총장 등 권력기관의 핵심들이 하루 아침에 경질되었다. 이제 수많은 국영기업체 및 정부산하기관의 장들도 곧 대폭 경질될 것이라는 보도를 접하면서 대통령의 대권을 국민들은 다시 한번 실감하고 있는 작금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정부투자기관은 한국전력공사 등 23개이고 정부출자기관은 포항제철 등 8개다. 작년도 정부투자기관의 예산총액은 67조5천억원이었고 출자기관의 예산총액은 14조2천억원이었다. 이들 예산 총액은 모두 81조7천억원으로서 우리나라 중앙정부의 일반회계예산 35조3천억원의 2,3배나 되었다. 이들 공기업이 제공하는 재화와 용역의 품질이 우수하고 국제경쟁력이 있어야 이들 제품을 중간재로 사용하는 민간부문도 국제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책임경영제 시들
이와 같이 공기업의 국민경제적 비중은 대단히 높다. 그러기에 곧 있게 된다는 공기업 장들에 대한 물갈이 인사에 대하여 우리는 기대와 우려를 가지고 그 귀추를 기다리고 있다.
「기대」란 인사개혁이 경영개혁으로 이어져서 우리나라 공기업부문이 또 한차례 발전의 계기를 맞이하리란 것이다. 「우려」란 공기업 경영진의 인사가 정치성을 벗어나지 못할 경우 경영효율이 오히려 나빠지리란 것이다.
공기업 경영층의 인사개혁이 경영개혁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정부투자기관에 대한 자율적 책임경영제도가 84년에 처음 실시되기 시작했을때 정부투자기관에는 새로운 경영혁신의 분위기가 조성되었었다.
종래 감사위주의 경영우선순위가 실적평가위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새로운 민간경영기법을 정부투자기관에 도입하는 힘든 고통도 감수했다. 그러나 포항제철 및 한국방송공사 같은 힘있는 공기업은 정부투자기관 경영평가 수감기관에서 빠져나가 버렸다. 그리고 자율적 책임경영제도의 실시도 이제 10여년이 경과해 상당한 매너리즘에 빠져 경영평가의 많은 부분이 형식화되어 가고 있다.
우리나라 금융산업은 타산업에 비해 낙후되어 있어 그중에서도 국책금융기관은 여전한 관권개입으로 더욱 뒤떨어져 있다는 이야기다.
목하 우리경제는 심각한 침체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국제경쟁력이 열악하여 이제 아시아의 4용대열에서도 탈락하고 대신 말레이시아가 앞지르고 있다는 보도도 있다. 세계은행도 우리를 이제 태국·인도네시아 등의 대열에 놓고 있다. 우리 민간부문의 국제경쟁력은 세계시장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데 우리 공기업의 경쟁력은 민간부문의 경쟁력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국제경쟁력 제고
기간산업을 담당하고 있는 공기업의 경쟁력이 향상되지 않고서는 민간기업의 국제경쟁력도 살아나기 어렵다는데 공기업 경영개혁의 시대적 당위성이 있는 것이다.
공기업의 경영생산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인물들이 공기업의 장으로 선임되어야 할 것이다. 공기업의 최고경영진의 자리는 이제 더 이상 과거 개발연대와 같이 학식과 덕망이 있으면 아무나 할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한국통신의 직원이 5만여명이고 한국전력공사의 종업원수가 3만2천명인 것처럼 공기업은 대체로 대형기업이다. 그러기에 공기업 최고경영진은 기업관리능력이 탁월해야 한다. 국제적 경영감각이 있어야 하고 뿐만아니라 경영환경변화에 신속히 대처할 수 있는 전문경영인이어야 할 것이다.
공기업 최고경영자의 자리에 엉뚱한 정치적 인물이 갑자기 낙하산식으로 떨어진다면 이것은 공기업 경영효율향상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대권의 운용이 자의적이라는 국민적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논공행상」 안될말
정부투자기관의 이사장제도 폐지를 신정부가 누누이 거론해온 것은 공기업을 정치적으로 운용하지 않겠다는 반증이 아니었겠는가. 공기업의 경영진이 항시 청와대를 쳐다보며 공기업을 운영하도록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대권은 김영삼대통령이 쟁취했다고 하기 보다는 국민들로부터 수임된 것이다. 따라서 공기업 경영진의 인사기준도 내사람 위주로 되거나 논공행상적 정치성이 개입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참으로 위임한 국민의 정서에 부응하는 대권운용이 이번 인사에서 드러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송대희 한국공기업학회장 kdi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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