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테러리즘(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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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아웃 사이더』 등의 저서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영국의 소설가이자 비평가인 콜린 윌슨은 살인문제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살인을 다룬 그의 글 가운데 특히 주목할만한 것이 「동기없는 살인」에 관한 대목이다. 심리학적으로는 동기없는 살인이란 있을 수 없지만 살인자가 범행을 저지르고서도 아무런 이득을 취하지 않는 경우를 그는 「동기없는 살인」으로 간주한 것이다. 취미로 툭하면 사람을 죽이고 즐거워한 로마제국의 황제들이 대표적인 예로 꼽히지만 현대사회에 이르러서 「동기없는 살인」은 그 유형도,수법도 훨씬 복잡하고 다양해졌다. 어머니 곁에서있던 두 어린이를 사살한 한 사나이가 『인구 폭발에 대해 뭔가 하고싶었기 때문이었다』고 동기를 털어놓는가 하면,함께 드라이브하던 여성을 쏴죽인 한 사나이는 『양심의 가책을 받는지,어쩐지를 시험해 보고싶었다』고 말했다. 모두 외국의 예지만 재작년 여의도에서 발생한 자동차폭주 살인사건도 그중 하나다.
국제 테러는 국가적 체제간의 이데올로기 갈등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기없는 살인」의 범주속에 넣기가 어렵다. 특정한 사람을 납치하여 상대국에 조건을 제시하고 죽이는 것이 국제테러의 주류를 이뤄왔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러나 최근 며칠 사이에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제테러행위는 우선 범행의 뚜렷한 목적을 드러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한결같이 선량한 「불특정 다수」의 생명을 마구잡이로 빼앗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기없는 살인」의 유형에 포함시킬만 하다. 주로 폭탄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도 그것을 뒷받침한다.
지난달 하순 미국 뉴욕 월드트레이드센터 폭파사건에 이어 러시아·중국·프랑스·필리핀 등지에서 비슷한 사건이 연이어 벌어지더니 12일에는 인도 봄베이 중심가에서 연쇄 폭발사건이 일어나 2백여명이 목숨을 잃은 대참사가 발생했다. 역시 국제테러범들의 동기없는 테러행위로 보고 있다. 콜린 윌슨은 「자유의 철학」이 국제테러리즘을 정당화시키는 근거가 되었다고 보고 있지만 이쯤되면 동기나 목적을 가진 테러행위는 오히려 떳떳하다고나 해야할지….<정규웅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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