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철강社, 美 설비까지 '꿀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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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중국이 미국의 철강업체에 '병 주고 약 주는' 세상이 됐다.

미국 업체들이 외국산 제품의 가격공세에 밀려 고전하는 가운데 중국의 중.대형 업체가 파산상태에 빠진 미 업체의 생산설비를 사들여 기업 구조조정을 돕는 효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중국 야금업계의 10대 업체 중 하나인 칭다오(靑島)강철은 최근 미국 제네바(Geneva)철강의 설비를 구매하기로 합의했다.

제네바 철강은 60여년의 역사를 가진 업체로 1987년 US철강을 인수한 뒤 지난 90년대 이후 4억달러를 투자해 생산설비를 현대화했다. 하지만 미국이 세계적인 철강업체의 각축장으로 변하면서 법적인 파산절차를 밟고 있는 중이다.

홍콩의 영자지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는 "칭다오강철(칭강)이 제시한 금액은 전체 투자액의 10%도 안 되는 3천5백30만달러에 불과하다"고 보도했다. 제네바 철강으로선 생산설비와 공장부지를 놓고 갖가지 매각 협상을 벌였으나 현찰 조건을 제시한 칭강의 제안이 그중 1억8백만달러의 빚을 갚는 데 현실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칭강은 각종 제품의 총생산량이 7백만t에 육박하고 있으나 앞으로 ▶설비 현대화▶제품 다양화▶시장 국제화 등을 통해 중국의 간판타자가 되겠다는 야심을 갖고 있다. 이번 설비 매입도 중국의 철강 수요량이 해마다 10% 늘고 있어 공격적인 확장전략을 세운 데 따른 것이다.

충칭(重慶)강철은 지난해 엔론 계열의 업체였던 EBF에서 연산 60만t의 냉연강판 설비를 사들였다. 원래 1천7백만달러(2001년 기준)의 자산가치를 갖고 있으나 매매 금액은 1백50만달러 안팎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충칭 측은 2002년 1백86만t인 생산능력을 2007년까지 3백50만t으로 늘릴 계획이다.

생산설비의 저가 매입 논란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외국의 중고 설비를 산 뒤에도 이를 뜯어 옮겨다가 중국에서 재조립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며 "설비가격은 전체 비용의 30%에 불과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업체가 미.유럽의 경쟁업체로부터 생산설비를 인수하는 현상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마안산(馬鞍山)강철 등 다른 업체 역시 철강 가격 하락과 인건비 상승으로 구조조정에 들어간 외국 업체들을 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홍콩=이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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