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진기자의오토포커스] 일본의 ‘원 박스 카’ 유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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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최근 재밌는 만화를 밤 새우다시피 하며 봤습니다. 제목은 ‘리스토어 개러지(Restore garage) 251’이라는 24권짜리 전집이었습니다. 자동차 매니어라면 ‘강추’합니다. 줄거리는 이래요. 삶의 한 부분이던 자동차와 함께 꿈을 이루고, 또 잃었던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단종된 구형 차를 새 차로 복원해 주는 수리 전문점 사장인 주인공(60대 노인)이 퇴물 자동차를 되살리면서 상처 난 인생마저 치유해 준다는 이야기입니다. 스토리를 좇아가다 보면 자연스레 자동차 지식이 늘어요. 이런 게 만화의 매력이지요. 자동차 매니어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평범한 이들 속에 녹아 있는 자동차 추억이 소재입니다.

 우리 삶 속에 자동차는 어떤 존재일까요. 단순히 가고 싶은 곳에 편하게 데려다 주는 이동 수단일까요. 옛 연인과의 사랑, 모정과 부정, 가족과 함께한 여행, 스승·친구와의 비밀스러운 약속…, 이런 삶들의 편린 속에는 자동차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죠.

 일본은 1950년대 자동차 산업이 본격 육성되면서 삶의 모습을 크게 바꿨습니다. 64년 도쿄 올림픽 이후 마이카 붐이 불면서 자동차 산업은 날개를 달았지요. 70년대는 모터 스포츠가 야구와 함께 활성화된 시기입니다. 일본 경제 신화를 만들어낸 오늘날 50, 60대는 포뮬러1(F1)·챔프카·일본 그랑프리 등에 열광했지요.

 그러나 요즈음 일본의 20, 30대들은 자동차에 열광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게임이나 사이버 문화 때문이죠. 자동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으로 전락했고 모터 스포츠 열기도 차갑게 식었지요. 이런 변화는 신차 판매에서 나타납니다. 지난해 일본 내수의 70%가 미니밴이었습니다. 프라이드만 한 차에 7명이나 탈 수 있는 각진 상자 형태의 ‘원 박스 카’가 인기입니다. 저렴할 뿐 아니라 가족이 한꺼번에 이동하는 데 편리합니다. 세단이나 스포츠카 시장은 힘을 잃었습니다. 80, 90년대를 풍미한 전설의 닛산 스카이라인, 도요타 수프라, 마쓰다 RX, 미쓰비시 랜서 에볼루션, 혼다 S2000…. 엔진 소리만 들어도 피가 끓는 명차들은 빛이 바랬거나 단종된 지 오래지요.

 우리의 자동차 문화는 어떨까요. 소위 386세대가 한국 모터라이제이션(motorization) 1세대입니다. 귀하기만 했던 자가용은 88년 서울올림픽 이후 마이카 바람이 불면서 엑셀·르망·프라이드를 첫 차로 구입해 직장생활을 했지요. 90년대 중반 레저 차량 붐이 불면서 카니발·카렌스·무쏘 등을 타고 자동차와 함께하는 여행문화를 만들었죠.

 그럼 앞으로는 어떨까요. 아직까지 문이 네 개인 세단이 신차 시장의 70%를 점유하지만 일본처럼 원 박스 카나 해치백(트렁크가 없는 5도어) 보급이 늘 겁니다. 세단보다 편리하니까요. 12일 나온 현대차 ‘i30’ 같은 차죠. 모터 스포츠 붐도 예상됩니다. 신나게 코너링를 즐기고 마음껏 달리는 서킷이 여럿 생긴다는 가정이 먼저입니다만. 또 70%가 산악지형인 국토의 특성을 살려 오프로드 주행장, 그리고 가족들과 여가를 보낼 캠핑카 주차장이 곳곳에 생길 겁니다. 그러면 자동차는 사랑과 우정, 추억의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겠죠.

 유럽·일본에 비해 천대받는 경차는 어떨까요. 혜택이 별로 없고 소비자가 중대형차를 선호해서 그렇다는 건 오해입니다. 문제는 자동차 메이커에 있습니다. 마티즈 한 모델로 경차 시장을 키운다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경차가 다양해져 소비자의 선택 폭이 넓어지면 판매도 지금보다 나아질 거예요. 정부의 정책은 이런 점에 맞춰져야 합니다.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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