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원로 법조인 민복기씨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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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 6대 대법원장을 지낸 민복기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변호사가 13일 오전 4시17분 서울대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94세.
 
민 전 대법원장은 법원과 법무부·검찰의 수장(首長)을 모두 역임한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1913년 서울에서 출생,38년 경성제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했다. 39년 경성지법 판사로 법조계 생활을 시작했다.

고인은 47년 검찰로 자리를 옮겨 3년 동안 법무부 검찰·법무국장으로 재직했다. 50년대에는 대통령 비서관·서울지검장·검찰총장을 역임했다. 63∼66년까지 4년 동안 법무부 장관도 지냈다. 그리고 고향인 법원으로 자리를 옮겨 68년부터 10년 동안 5,6대 대법원장을 지냈다. 대법원장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국정자문위원, 헌정제도연구위원장을 맡아 국정을 자문하는 국가 원로 역할을 했다. 1987년부터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고문 변호사로 활동해 왔다.

고인은 71년 이른바 ‘제1차 사법파동’ 당시 대법원장이었다. 이 사건은 검찰이 시국사건에 대해 무죄 판결을 많이 낸 서울형사지법 항소3부 이범렬 부장판사와 배석인 최공웅 판사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시작됐다.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의 증인심문을 위해 제주도로 가서 피고인 측 변호사로부터 향응을 제공받았다는 혐의였다.

서울형사지법 유태흥 수석부장판사가“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가 없다”며 이들 판사들에 대한 영장을 기각했으나 검찰은 증거를 보강해 다시 영장을 청구했다. 이에 일선 판사들은 집단 사표를 내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리고 당시 정부에 의해 이뤄지던 사법권 침해사례를 공개하며 ‘사법권 독립’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민 전 대법원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만나 판사들의 요구사항을 설명해 사건의 원만한 해결을 시도하려 했으나 면담에 실패했다. 결국 사법파동 주역인 법관들은 요구사항을 관철시키지 못한 채 스스로 사표를 철회해야 했다.

그는 73년 대법원장 신년사를 통해 “나라의 통일과 번영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정치권력의 구조가 가장 집중적·효율적이어야 한다는 게 유신헌법의 본질인 이상 사법권의 존재 양식 또한 이에 발맞춰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날 빈소에는 이용훈 대법원장 등 법조계 인사들의 문상이 줄을 이었다.

유족으로는 장남 경성씨 등 2남 2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영안1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6일 오전, 장지는 대전 국립현충원이다. 전화 02-2072-2020

 
김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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