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 없는 통합' DJ의 위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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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민주당 김한길(右), 박상천 공동대표가 13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중도개혁 대통합추진위원회 첫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조용철 기자]

통합민주당 박상천 대표가 정세균 열린우리당 의장과 대통합 협상을 일괄 타결할 의사가 있음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표는 최근 통합민주당으로 합당되기 전 민주당 소속이었던 당내 핵심 인사들과의 비공개 회의에서 "7월 안에 대통합을 마무리하겠다"고 말했다고 당 관계자가 13일 전했다. 박 대표는 "정세균 열린우리당 의장과 4자 회동을 통해 대통합 협상을 일괄 타결할 수 있다"는 뜻도 밝혔다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박 대표는 같은 당 공동대표인 김한길 대표, 정 의장, 탈당그룹을 대표하는 정대철 전 열린우리당 고문 등과 7일 만나 통합 방안을 논의했다. 이 회동은 며칠 후 다시 열릴 예정이었으나, 박 대표 등이 요구한 열린우리당 해체에 대해 정 의장이 난색을 표하면서 연기됐다.

박 대표는 그동안 열린우리당 전체를 포함하는 통합에 대해 "국정 실패를 고스란히 떠안아 대선 승리가 어렵다"며 강하게 반대해 왔다. 그런 그가 '일괄 타결'을 언급한 것은 강경론에서 상당히 후퇴한 것으로 범여권에선 보고 있다. 실제로 그가 대통합 쪽으로 선회할 경우 범여권 통합에 변수가 될 전망이다.

박 대표는 김한길 공동대표가 '기득권을 버리고 동참하겠다'고 선언한 제3지대 통합신당에 참여하는 방안도 수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당 관계자에 따르면 박 대표는 비공개 회의에서 "열린우리당에서 상당 규모의 탈당이 추가로 이뤄질 경우 탈당그룹과 당 대 당 통합을 하겠다"고 말했다.

박 대표의 이 같은 언급은 연일 조건 없는 대통합을 요구하고 있는 김대중(DJ) 전 대통령 측의 압박이 큰 요인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효석.신중식 의원 등 민주당 내 대통합파 의원들이 다음주 초 탈당을 공언하는 등 통합을 요구하는 압박의 강도가 거세지고 있어 자칫 하다간 자신만 외톨이가 될 수 있다는 위기감도 작용한 것 같다.

하지만 박 대표가 실제로 대통합으로 급선회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박 대표는 정세균 의장과 담판을 벌일 경우 ▶국정 실패에 대한 열린우리당의 사과 표명과 ▶민주당에 대한 지분 인정 등을 요구한다는 구상을 가다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열린우리당 입장에선 둘 다 쉽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조건이다.

이 때문에 박 대표가 통합 협상을 하면서 50대 50의 지분 조건을 내걸어 막판 대통합의 발목을 잡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김성탁 기자<sunty@joongang.co.kr>

사진=조용철 기자 <youngcho@joongang.co.kr>

범여권 통합에 대한 통합민주당 박상천 대표의 입장 변화

"국정 실패 책임자와 함께할 수 없다."(5월.특정세력 배제론)

"중도통합 민주당이라는 새 정당이 출범하면 민주당의 기존 원칙과 기준이 유지될 수는 없다."(6월.배제론 철회)

"열린우리당과의 당 대 당 통합은 하지 않겠다. 열린우리당은 해체돼야 한다."(7월 초)

"정세균 열린우리당 의장과 통합협상 일괄 타결할 수 있다."(최근 비공개 회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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