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교육혁명 중] 3. 자본주의 뺨 치는 中 사립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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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北京) 근교 후이자(匯佳)학교. 초.중.고교가 다 있는 사립 기숙학교다. 생긴 지 10년됐다. 지난해 12월 31일 오후 학교 정문. 벤츠.BMW.렉서스.아우디 등 고급 승용차 수백대가 장사진을 이뤘다. 사흘간 신정(新正) 방학을 맞은 기숙사 학생들을 '모시러' 온 승용차 행렬이었다.

이 학교의 한국인 학부모 최혜영(43)씨는 "외국 유학을 꿈꾸는 중국 부유층 학생들의 '귀족 학교'로 보면 딱 맞다"고 말했다.

그래서 취재팀이 이 학교에 들어가 봤다. 숲에 둘러싸인 캠퍼스, 방마다 에어컨과 인터넷 전용선을 갖춘 기숙사, 수영장.볼링장이 있는 체육관, 전체 재학생(2천명)의 10%에 불과한 외국인 학생을 위한 전용식당…. 한마디로 자본주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아니나 다를까. 이 학교 학생들의 연간 학비는 8천~1만여달러(약 9백60만~1천2백여만원)나 됐다. 중국 평균 근로자 연봉이 1천2백~1천3백달러(약 1백50만원) 수준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돈이다.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한다는 유일(唯一), 남들이 한다면 그 중에 최고가 되겠다는 제일(第一)이 우리의 슬로건이다." 왕자준(王家駿)교장의 말이다. 이 학교 졸업생의 상당수가 미국.호주.캐나다 등의 대학으로 유학을 간다.

평등을 유독 강조하는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어떻게 이런 학교가 생겨났을까.

이 학교 외국학생부의 우유성(吳有聲) 주임은 "(이런 학교를 원하는)수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고급학교를 원하는 돈 많은 사람들을 겨냥해 사립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졸업생의 절반이 중국 베이징대와 칭화(淸華)대에 진학한다는 공립 베이징 4중학교는 가정 형편과 관계없이 공부 잘하는 학생이 다니는 학교다. 공.사립이 각기 다른 역할을 맡고 있는 셈이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9월 발효된 '민판(民辦.민간운영)교육촉진법'을 통해 사립학교에 재산권과 자율권 일체를 줬다. 베이징에만 2백개가 넘는 사립학교들도 이런 혜택을 누린다. 학생이 모자라 망하는 사립학교도 있다. 그렇다고 교육 당국이 나서지 않는다. 사립이기 때문이다.

이번엔 후이자와 비슷한 시기인 1995년에 생긴 강원도 횡성 민족사관고로 가보자. 2002학년도에 자립형 사립고로 전환했지만 학교를 옥죄는 규제가 한 둘이 아니다. 교육당국이 등록금.교과과정에서부터 장학금 지급까지 일일이 간섭한다.

학교 관계자는 "서울 등 대도시에 있는 사립 외국어고교보다도 납입금(분기당 51만원)이 적다"고 말했다.

해마다 학생을 뽑을 때 "지필고사를 보지 마라"는 규제를 피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는다. 게다가 일반인들의 시선도 곱지 않다. 납입금을 올리겠다는 소리가 나오면 "귀족 학교를 만들겠다는 것이냐"는 비난을 산다. 평등주의란 다수의 논리로 우리의 사립은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것이다.

비교해 보자. 과연 어디가 더 자본주의적인가.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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