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을 보는 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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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우피치미술관을 30년만에 다시 참관했다. 우피치는 우리말로 사무실을 가리킨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발상지인 피렌헤의 메디치가문 사무국이 바로 여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문화사적 업적을 기린다는 뜻에서 오늘까지도 우피치라고 부른디.
우피치미술관에는 미켈란젤로·라파엘로·티티아노 등 단숨에 돌아 나오기가 민망할 정도로 르네상스 거장들의 작품이 벽면마다 가득하다.
그러나 이번 참관은 수복된 작품을 감상하는데 있었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문화유산이 풍족한 이탈리아는 물려받은 예술품을 보관하고 수복하는데 엄청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수복의 기술은 이탈리아가 단연 세계적이다. 바로 이 솜씨를 현장에서 눈 여겨 봐 두자는게 참관의 목적이었다.
과연 듣던대로 보티첼리의『봄』과『비너스의 탄생』은 눈을 의심할 정도로 선명하고 눈부시게 수복되어 있었다. 5백년전의 작품인데도 방금 붓을 놓은 것처럼 싱싱한 색채로 살아 있는게 아닌가. 81년 5월에 시작한 수복은 꼭 1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런데 옆에서 돋보기로 들여다보는 백발 노신사의 참관태도에서 이상함을 느꼈다. 관례적인 작품감상의 태도가 아니었다. 어떤 소중한 분실물을 돋보기로 찾고 있는 듯한 태도를 그는 보이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그의 시각은『봄』의 아름다운 여체들보다도 한층 낮은 풀밭의 이곳저곳을 더듬고 있었다. 노인은 영국의 식물학자였고, 찾고있는 것은 풀밭 여기저기에 핀 꽃들이었다. 수복하여 깨끗하게 되살아난 신성한 꽃들은 히아신스·물망초·들국화·아네모네·제비꽃·민들레 등 초원의 생명들이다.
이것을 개별적으로 분류하고 조사하여 5백년전 피렌체의 산야에 살던 식물과 현재의 그것을 비교, 정리하는게 노신사의 미술을 보는 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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