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병원·유명 의사 만나면 O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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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삼성서울병원의 커피 향내가 사라졌다. 로비에 있던 스타벅스가 올해 4월 철수한 것이다. 장사가 안 돼서일까. 스타벅스 삼성서울병원점은 2002년 5월 오픈한 이래 줄곧 전국 200여 매장 중 매출액 10위권 안에 들던 곳이다. 병원 입장에서 스타벅스는 임대사업이라는 새로운 수익원이었다.

▶ ‘꿈의 항암치료기’라 불리는 양성자치료기. 기존의 X-선 치료법에 비해 정상조직의 손상을 최소화하고, 양성자선을 이용해 암부위만을 선택적으로 공격ㆍ치료하는 장점이 있다. 현재 국내에는 국립암센터에만 있으며 삼성서울병원 암센터에서도 도입할 예정이다.

지하 매점밖에 없던 병원에 지금은 커피전문점, 생과일주스전문점 등이 자연스레 자리 잡은 것도 당시 스타벅스와 삼성서울병원이 ‘병원에 커피점이 웬말이냐’는 고정관념을 깬 결과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스타벅스 대신 벤치만 죽 늘어서 있을 뿐이다.

스타벅스가 사라진 진짜 이유는 암센터 건립 때문이다. 삼성서울병원은 연면적 3만3000여 평에 650병상 규모 아시아 최고 수준의 암 전문치료기관을 목표로 2008년 1월 초 암센터를 열 예정이다. 이미 골조공사는 끝났으며 내부공사가 한창이다.

빅5, 암과의 전쟁 시작됐다

암센터는 본원과 떨어져 지어지는데, 본원 내 스타벅스를 없앤 이유는 암센터 개원 이전과 함께 진료실 앞 환자 대기 공간이 더 필요했기 때문이다.

삼성서울병원뿐 아니라 다른 국내 대형 병원도 별도의 암센터 전문병원을 세우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지금도 암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2008년께에는 서관을 리모델링해 명실상부한 암센터를 건립할 예정이다.

서울대학병원은 올해부터 외래 암센터 건립에 착수, 2009~2010년 개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연세대세브란스병원은 2008년 3월 500병상 규모의 암전문 병원을 짓는다고 발표했다. 여기에 국립암센터까지 더하면 그야말로 우리나라에서 암수술 많이 한다는 이른바 ‘빅5’의 암 전쟁이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정말로 입원은 쉬워질까

왜 암일까. 다른 질환에 비해 암이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암이 무너지면 병원 무너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 질병으로 인한 국내 사망원인 중 암이 26.7%로 타 질환에 비해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혈관질환 13.9%. 심장질환 9.3%, 당뇨 4.8%에 비교해봐도 두 배 이상 높다. 병원마다 신규 암 환자도 10년간 두 배 정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암센터가 생겨 병상 수가 늘면 증가하는 수요를 흡수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 다소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다. 빅5의 시설이 확장되면 암 환자 쏠림 현상이 더욱 심해질 것이란 분석이다. 현재 국내에서 암 수술을 가장 많이 하고 있는 아산병원의 한 관계자는 “아산병원에 암 수술 환자가 많은 것은 질적인 부분도 우수하지만 양적인 부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환자 풀이 넓고 입원할 수 있는 베드 수도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삼성서울병원 관계자는 “너나없이 오는 것도 문제다. 대형 병원에서는 중증 환자들이 우선돼야 하는데 경증 환자까지 오는 것은 환자가 줄어드는 중소형 병원이나 우리나 모두 문제”라고 지적했다. 환자들이 가뜩이나 대형 병원을 선호하는데 암 전문이라는 타이틀까지 달면 오히려 대형 병원 쏠림현상이 가중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암센터 이후 진료의 질적 수준은 향상될까. 이론상 ‘그렇다’. 새로 기계가 들어오고 건물이 지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암센터의 핵심은 협진체제다. 진단-판독-치료까지 하나의 사이클로 움직이면 치료 속도도 빨라지고 의사 간 암을 보는 다양한 관점과 의견이 오가기 때문에 적절한 판단을 할 확률을 높일 수 있다. 암센터라는 물리적인 공간이 제공됨으로써 함께 모일 공간이 확보되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런 시스템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은 예외적인 케이스의 암 치료에만 주로 협진체제를 활용하는 편이다. 현재는 위암이라면 진단은 소화기 내과에서, 치료는 외과에서 나눠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는 의사 간의 의사소통이 활발하지 못할 수밖에 없다. 스케줄 맞추는 것 조차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협진체제하에서는 대기시간을 많게는 한 달 정도 단축할 수도 있다.

또한 의사 위주의 ‘과’ 단위 분류가 아닌 환자 중심의 ‘병’ 위주로 치료가 진행되고 간호하기 때문에 환자가 피부로 느끼는 ‘보살핌’의 수준이 나아질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제 의사 한 명을 볼 것이 아니라 팀을 보고 의료진을 결정해야 할 것이다.

의사만 잘 만나면 낫는가

일반인이 어떻게 좋은 의사와 병원을 고를 수 있을까. 암 수술 건수가 많은 병원, 수술 후 입원 일수, 의사 한 명당 담당 환자 수 정도가 우리에게 공개된 자료였다.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한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모두가 납득할 만한 기준은 아직 한국엔 없습니다. 암 치료율도 1기, 2기, 3기, 4기에 따라 다르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말기암의 경우 환자 사망률이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의사는 일부러 4기 환자를 피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성적을 좋게 만들기 위해서죠.”

덧붙여 그는 “병원, 의사마다 암 기수에 따른 치료율이 공개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뿐만 아니라 의사의 장단점이 다른 만큼 병원에서 이를 알려줘야 한다”고 충고하기도 했다.

의사 사회도 팀제 가능할까

올해 초 인기리에 방영됐던 MBC 드라마 ‘하얀거탑’. 이 드라마에서는 의사 집단이 굉장히 서열화된 것으로 그려진다. 실력도 중요하지만 정치도 중요한 사회란 얘긴데, 과연 이런 곳에서 암센터에서 그리는 ‘팀제’가 가능한 것일까.

국립암센터 신상훈 교수는 “가능하다”고 말한다. “일본 드라마가 원작이라 그런 것도 같다. 분명 의사 사회가 선후배 관계가 뚜렷하긴 하지만 팀제를 저해할 정도는 아니다.” 그는 일본 의사 사회에 대한 인상도 들려줬다.

“일본 도야마에서 열린 학회에 갔는데, 일본 정통의 1인상 차림이 나오는 식사 자리가 있었습니다. 관동, 관서 지방의 최고 대학병원은 각각 도쿄대와 교토대로 나뉘는데 그 두 병원장이 앉고, 그 아래로 서열대로 원장들이 앉더라고요. 사실 일본 의사들이 저희 암센터에 와서 팀제가 어떻게 잘 운영될 수 있느냐며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이를 다르게 생각하면 아시아 의료허브가 되는 데 있어 의료수가 문제 등 제도만 뒷받침되면 일본 등 선진국보다 경쟁우위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이진수 국립암센터 연구소장 인터뷰

“환자가 재판관처럼 의사 평가해선 안 되죠”

환자에도 좋은 환자 나쁜 환자가 있다? 세계적인 폐암 전문의 국립암센터 이진수 연구소장을 만나 암센터 운영에 있어 필수적인 조건을 물었더니 이런 말을 한다. 그는 현재 세계폐암학회의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미국 MD 앤더슨 출신으로 삼성 이건희 회장, 코미디언 이주일씨 등을 치료한 것으로 널리 이름이 알려지기도 했다. 그는 “선진적인 암 진료를 위해선 환자의 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말하면 일반 환자들이 화를 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이미 한국의 의료 수준은 세계적”이라며 “환자들은 그러나 선진국 수준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 의료 수준도 미국 등 선진국을 많이 따라잡았습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쪽은 그룹으로 치료(group-practice)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 의사 개개인의 능력에 의존(solo-practice)한다는 점이죠. 암센터가 생겨나면서 우리도 점차 선진국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또 최근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임상시험을 의뢰하러 한국을 많이 찾고 있는 현상을 보십시오. 오늘 아침에도 국립암센터를 찾아왔습니다. 항암제 임상시험을 진행한다는 것은 국내 의료진과 임상센터의 실력이 세계적 수준이라는 얘기입니다. 문제가 있다면 오히려 환자들의 마음가짐입니다.”

병원도 의사도 발전해야 하지만 환자 역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환자 중에는 ‘환자가 원하면 의사가 무엇이든 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의사와 환자 사이에 믿음이 있어야 암을 치료할 수 있는데 환자들은 재판관이라도 된 것처럼 의사를 평가하려고만 하죠.”

환자가 의사를 믿지 못한다면 그동안 의사들에게도 문제가 있진 않았을까.

“의사들이 무조건 옳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의사들 말 중 85%가 옳다고 보면 됩니다. 암 치료는 첨단기술을 도입하는 것과 다릅니다. 반도체에서야 최신기술이 있으면 덥석 적용하기도 하고 시그마 6을 적용해 99.9% 완벽한 제품을 만들려고 하겠지만 의료 행위는 사람을 대하는 일입니다.

100% 완벽한 것은 없는 것이죠. 그런데 어떤 환자들은 ‘어느 병원의 누가 좋다더라’하면 솔깃해서 리셋버튼 누르듯 이미 한 진단을 다시 처음부터 받기도 합니다. 그 결과 오히려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치기도 하죠.”

환자가 의사를 신뢰하지 못해 이 병원 저 병원 옮겨 다니다가 상황을 나쁘게 만드는 것이 첫 번째 문제라면 두 번째 문제는 이기주의다.

“자신만 먼저, 오래 봐 달라는 것은 일종의 이기주의입니다. 다른 환자도 많은데, 의사는 한 환자에게만 매달릴 수 없습니다.”

그에게도 치료요청 전화가 쇄도하지만 ‘먼저 봐 주기’는 없다고 한다. 그래도 유명인을 볼 때는 좀 다르지 않았을까.

“다른 점이 있긴 있었죠. 그룹 총수나 CEO들은 의사를 결정하고 치료방법에 확신을 가지기까지 나름대로 검토 과정을 거치고 오랜 시간을 투자합니다. 그러나 일단 한 의사에게 자신의 치료를 맡기면 그때부터 의사에게 일임하고 믿습니다. 어려운 선택을 여러 번 하다 보니 익숙해진 것일까요. 이런 것은 사회생활 속에서 체득된 의사결정 방식이라고 생각됩니다.”

부자 환자 가난한 환자, 더 아픈 환자 덜 아픈 환자의 구분은 있어도 착한 환자 나쁜 환자를 나눠 본 적이 있었을까. 그가 말하는 착한 환자는 자신이 선택한 치료에 확신을 가지고 나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기다릴 줄 아는 환자일 것이다. 덧붙여 가장 착한 것은 암 예방을 위해 건강한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닐까. 그는 이미 22년 전 담배를 끊었다고 한다.

그래도 명의를 찾고 싶다면

환자들이 더 잘 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자 (×)
‘어떤 약이 좋다더라. 누가 용하다더라’ 하는 등 인터넷에 떠도는 수많은 말은 사실일 수도 거짓일 수도 있다. 또한 같은 종류의 암이라도 환자마다 치료법은 다를 수밖에 없다. 특정환자의 경험이 나에게도 꼭 맞으란 법은 없다.

차라리 개원의에게 물어라 (○)
남자는 남자가 봐야 안다는 말처럼 의사도 의사가 보면 안다. 마찬가지로 당신이 인공관절 수술을 한다면 인공관절 의료상에게 물어보면 어떤 의사가 좀 더 뛰어난지 알 수 있다.

임성은 기자 lseco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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