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맥관리 위해 관행적 정기상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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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한국IBM은 매출 1조원대의 업체로 정보기술(IT)업계의 '맏형 기업'으로 꼽힌다. 1967년 한국에 진출해 그간 국내 컴퓨터산업의 인프라 구축을 주도해 왔고 한국이 IT강국으로 도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컴퓨터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국IBM이 초창기부터 정부 등 공공기관에 제품을 공급하고 기술을 전수해 온 탓에 이들 기관의 전산담당자들은 다른 회사제품이라면 거들떠보지 않을 정도"라고 말했다.

한국IBM이 터를 닦아 놓은 공공기관에는 다른 업체가 넘보기 어려울 정도로 영업력이 막강했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한국IBM이 관공서에서 수십년 동안 우월적 지위를 유지하다 보니 공무원들의 생리를 무시하기 힘들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기소된 한국IBM 관계자들은 "회사가 윤리경영을 강조하고는 있으나 공공기관에 제품을 공급하기 위해선 인맥관리 차원에서 정기적으로 금품을 전달하는 관행을 무시할 수 없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의 한 관계자도 "일부 공무원들이 금품을 먼저 요구한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한국IBM 측이 높은 시장점유율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편법 영업을 한 결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검찰 수사에서 드러난 한국IBM의 로비와 담합 수법은 국내 기업들을 뺨칠 정도였다. 국내 서버 시장의 39%를 차지하고 있는 한국IBM은 공공기관 등에 비교적 높은 가격으로 서버를 공급하기 위해 협력사 중에서 '낙찰 유력 업체'와 '들러리 업체'를 미리 선정, 입찰에 참가하도록 했다.

그 뒤 낙찰업체가 결정되면 들러리 업체에 이익을 나누는 방법을 썼다고 한다. 한국IBM 측은 이를 통해 챙긴 수익을 누락시켜 30억~40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했고 협력사인 윈솔을 통해 들러리 업체에 15억여원을 제공했다.

한국IBM 측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일부 개인이 회사 업무지침과 윤리기준을 위반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로 관련자 3명을 해고했다"며 "회사가 불법 행위를 승인하거나 묵과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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