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고] 韓·美 통상분쟁 피하려면 '안보 동맹'카드 꽉 붙들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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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11월 대선을 앞두고 있는 미국의 올 한해는 두말 할 것도 없이 '정치의 해'다. 미국의 대외 통상정책, 한.미 통상 관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변수도 대선이다. 재선을 노리는 부시의 큰 골칫거리 중 하나가 일자리다. 제조업 일자리가 몰려 있는 오하이오.미시간 등 중서부주는 공화당의 대선 승리에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민주당 대선 후보들은 이미 부시를 공격하기 위해 늘어난 무역적자와 줄어든 일자리를 들먹이고 있다.

노조는 더 큰 정치적 압력을 가하고 있다. 노조 가입률이 계속 떨어져 고심하던 노조는 영향력을 되찾기 위해 부시의 경제 정책을 '일자리가 늘지 않는 경제 회복(jobless recovery)'이라며 비판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실제 미국에서 일자리는 제조업을 중심으로 계속 사라지고 있다. 부시가 취임한 2001년 이후 3백20만개의 일자리가 순감(純減)했다. 미국이 실업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39년 이후 최악의 일자리 불황이다.

당연히 부시 행정부의 수사(修辭)와 정책은 통상 분야에서도 점점 더 거칠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선 미국은 중국 같은 나라를 자주 공격할 것이다. 미국 내 일자리를 앗아가고 있는 나라로 중국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중 (對中) 무역적자가 1천2백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면서 미국은 시장을 더 열고 위안화 가치를 높이라고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이에 비하면 한.미 통상 관계는 다행히 상대적으로 평화롭다. 2002년 1백30억달러였던 미국의 대한 (對韓) 무역적자가 지난해 1~9월 전년동기 대비 6% 줄어든 것도 긍정적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한.미 관계에서 테러와의 전쟁, 이라크 재건, 북핵 등 안보 문제가 경제 이슈를 압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에 동참한 한국에 고마워하고 있다. 이라크 재건 비용 2억달러 부담과 한국군 3천명 이라크 파병 결정은 한.미 동맹을 강화시켰다.

나는 한.미가 안보 문제로 밀접하게 협력하고 있기 때문에 올해 미국이 통상 문제로 한국을 공격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믿는다.

하지만 정치적 압력에 밀린 부시 행정부가 선거전의 일환으로 한국에 대한 통상 압력을 강화할 가능성도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 그런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한국은 통상문제에 있어 눈에 띄는 행동을 자제해야 하며, 양국 간의 불협화음이 생기면 초기에 대처해야 한다. 갈등은 바로 해결되지 않으면 공개적인 논쟁으로 이어지고, 이는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한다.

통상 분쟁을 피하는 최고의 보험은 미국 당국자들에게 한국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미국의 든든한 동맹국임을 계속해 확신시키는 것일 수 있다. 옳건 그르건 미국은 지금 자신들이 전쟁 중이라고 여기고 있으며, '내 편 아니면 적'이라는 관점에서 동맹 수준을 따진다. 불행히도 미 의회와 국민 일부는 한국이 과연 한.미 동맹을 견고히 지지하는지 의심하고 있다.

이제 한국은 이라크 파병이라는 용단을 내린 만큼 테러와의 전쟁과 이라크 재건에 있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동맹임을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 그런 노력은 양국 관계를 더욱 강화하고, 한국을 무역 분쟁에 덜 휘말리게 만들 것이다.

'정치의 해'인 올해 미국과의 통상 분쟁을 피하려면, 한국 정부와 재계는 필요한 조치를 '지금' 취해야 한다.

김석한 워싱턴 애킨검프 법률회사 매니징 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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