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청와대… 문민냄새 물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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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권위주의 색깔 추방… “아니오” 말할 분위기로/보통의자로 바꾸고 임명장 주면서 농담도
청와대가 김영삼대통령의 선도로 급속히 달라지고 있다. 이미 인사에서 문민 경호실장,운동권 수석비서관,교수 안기부장,40대 변호사 서울시장 등으로 「파격」을 거듭하고 있는 김 대통령은 청와대운영도 마찬가지로 하고있다.
우선 그는 형식주의를 거의 무시,근엄하기 이를데 없던 임명장수여식이나 수석회의·국무회의 주재를 정당총재때 하던 식으로 하고있다. 25일 수석비서관 임명장을 주고 사진을 찍으면서 김 대통령은 키 1m88㎝의 홍인길총무수석이 다가오자 『키가 너무 커서… 며칠후 방한할 콜 독일총리와 서면 이렇겠지』라고 해 엄숙한 식장이 웃음바다가 됐다.
26일 국무위원들에게 임명장을 줄때도 한명 한명에게 『할일이 많습니다』『열심히 하십시오』『살이 많이 쪘군요』라고 코멘트해 친근감을 표시했다.
김 대통령은 부정부패척결이란 서슬퍼런 개혁목표를 두고 있음에도 청와대의 분위기는 눈에 띄게 부드러워 문민색채를 띠고 있다.
수석비서관 회의를 지켜본 기자들이 『회의가 마치 헤어졌던 가족들의 해후같다』고 하자 한 측근은 『김 대통령이 누구에게나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게끔 분위기를 만들려 한다』고 전했다.
김 대통령은 우선 과거 『각종 회의의 시작 5분전 대기,대통령입장시 기립·부동자세』라는 관례를 없앴다.
또 대통령행사에 비서실장이 일일이 배석하지 말도록 조치했다.
회의 스타일도 달라졌다. 김 대통령은 앞으로 가벼운 아침식사를 겸한 장관회의를 자주 열고 장관들의 대통령면담 기회를 대폭 넓히겠다고 밝혔다. 그는 27일 첫 국무회의에서 『앞으로 감사원장과 안기부장은 국무회의에 참석할 필요가 없다』고 해 「엄정」을 중시해야 할 두자리의 특성을 존중했다.
그는 또 경호실장을 국무회의에 참석치 못하도록 해 경호실장의 역할을 분명히 했다.
김 대통령은 이미 봉황의 대통령 문양이 새겨진 으리으리한 의자를 모두 보통의 사무실에서 볼 수 있는 나무의자로 바꾸어 버렸다. 격식과 외양을 중시하는 권위주의 군사문화를 자연스런 실천으로 청산하겠다는 의지다.
그의 40년 정치과정에서 몸에 밴 언론관도 전임대통령과는 달랐다. 26일 황인성총리를 비롯한 전국무위원들이 옆에 있는데도 이를 제치고 출입기자와 간단한 시국토론을 하는 여유를 보였다.
김 대통령은 27일 첫 국무회의에서 장관들의 자기혁신과 자기정화를 촉구하면서 대통령자신이 먼저 재산을 공개했다. 이에 대해 대통령의 개혁의지는 알고 있지만 「설마」「행여」하던 일부 장관과 고위공직자들은 눈에 띄게 겁을 먹고 바짝 긴장하고 있다.<김현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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