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열린 인왕산과 청와대 앞길(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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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문민시대 개막과 함께 25년만에 개방된 청와대 주변도로와 인왕산에는 개방 첫날인 25일 추운 날씨에도 불구,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이날 낮 12시를 기해 청와대 주변 신교삼거리와 팔판로·효자로 입구 등을 가로막고 있던 바리케이드가 철거되자 주변에 몰려있던 시민들은 은행나무와 플라타너스가 어우러진 거리를 마음껏 활보했다.
『평생 가볼 수 없는 곳으로만 알았던 청와대 앞길을 생전에 거닐게돼 감개무량하다. 지척에서 청와대를 바라보니 새시대의 개막이 한층 실감난다.』
아기를 가슴에 안고 산책나온 젊은 부부나 도포차림의 지리산 청학동 할아버지도 한결같이 감회어린 표정으로 환호성을 지르거나 서로 손을 흔들며 기쁨을 나누는 모습이었다.
밀려드는 청와대행 손님을 태우느라 바쁜 하루를 보낸 택시운전사 성상경씨(32·서울 목동)는 『차를 몰고 3분이면 통과할 수 있는 길을 자유롭게 왕래하는데 20여년이나 걸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68년 1·21사건이래 입산통제 25년만에 개방된 인왕산 3백38m 정상에도 많은 등산객이 몰려 눈앞에 펼쳐진 청와대 전경을 향해 『야호』 함성을 힘차게 질렀다.
종로구 옥인동 배화여고에서 시작되는 등산로는 꽤 가팔랐지만 그동안 발길이 끊어졌던 탓에 산길은 휴지·꽁초 하나없이 깨끗한 산을 오르는 시민들의 표정을 더욱 밝게했다.
이날 주변도로 인왕산 개방을 누구보다 반긴 사람들은 「단지 대통령의 이웃이라는 이유」만으로 불편을 감수해야만 했던 인근 주민들.
주민 윤길원씨(68·서울 삼청동)는 『그동안 지름길을 빤히 두고 경복궁 앞길로 돌아갈때나 인근의 인왕산에도 오르지 못할때는 억울한 기분이 들었었다』며 빼앗긴 「통행권」 회복을 기뻐했다.
새정부 출범 첫날 청와대 주변 도로와 인왕산을 찾은 시민들의 표정에는 이번 조처가 단순한 개방 차원을 넘어 지난 세월동안 정부와 국민들간에 가로놓였던 벽을 허무는 「작은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었다.<예영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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