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 서비스 무한경쟁 시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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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 서비스가 무한경쟁 시대에 접어들었다. 통신과 방송을 아우르는 다양한 컨버전스(융합)에 신·구 서비스를 망라한 결합 서비스가 잇따라 출현하고 있다. 나아가 이동통신 업계의 3세대 휴대전화 선점 경쟁도 통신 서비스의 양적 확대와 함께 질적 변화를 이끌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런 통신 빅뱅은 큰 관심사다. 일상 생활과 국가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국내 통신 시장 규모는 연간 50조원에 이른다. 여기다 정보기술(IT)이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실로 막중하다. IT 산업은 국내총생산(GDP)의 16.2%, GDP 성장기여율의 40.8%, 수출의 43%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 만큼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앞당기려면 IT 시장, 특히 통신시장의 지속적인 성장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통신시장의 성장은 그동안 설비 기반 경쟁과 함께 이뤄졌다. 설비 기반 경쟁은 통신사들이 의무적으로 일정 수준의 설비를 구축하도록 함으로써 관련 투자를 촉진시켰다. 또 설비 기반 경쟁이 통신 서비스의 품질 향상으로 연결되면서 IT 부문 산업 발전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이에 힘입어 세계 최고 수준의 IT 기술 확보가 가능해짐으로써 국내 산업 전반의 성장을 이끌었다.

 그런데 2001년 이후 이 같은 성장세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통신 서비스를 비롯한 IT 산업 전반에 정체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부동의 1위였던 한국의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이 지난해엔 덴마크·네덜란드·아이슬란드에 이어 4위로 밀려났다.

유선전화와 초고속 인터넷, 휴대전화 등 기존 서비스 시장은 포화 상태에 접어들어 과점 구조가 고착화돼 성장이 둔화되고 있다. 3세대 이동통신(HSDPA·고속하향패킷접속)과 와이브로(휴대 인터넷)·인터넷전화(VoIP) 등 신규 서비스의 활성화도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통신 사업자들이 기존 시장의 수익성을 지키는 데만 힘을 쏟고, 불확실성을 이유로 신규 서비스엔 투자를 주저한 결과다. 아울러 제도적 제약으로 인터넷TV(IPTV) 등 차세대 서비스의 도입이 지연되는 것도 성장 둔화의 요인으로 지적된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정부가 제시한 통신 시장 중장기 로드맵은 융합 시대에 걸맞은 선순환 구조 정립과 새로운 도약을 위한 적절한 틀로 보인다. 로드맵의 핵심은 경쟁의 극대화를 통한 이용자 중심의 시장 환경 조성이다. 신규 서비스의 원활한 시장 진입과 기존 서비스 간 경쟁 활성화를 통해 현재의 제한적 경쟁 구조를 깸으로써 경쟁의 과실을 이용자가 누릴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통신시장 전체의 무한경쟁을 지향하고 있다.

 7월 들어 통신 결합 서비스가 시작됐다. 소비자는 유·무선 전화 및 데이터 서비스를 망라한 다양한 결합상품을 쓰면서 요금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내년엔 인터넷 전화의 번호이동제도까지 도입된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기존 유선전화 사업자와 인터넷 전화 사업자 간 경쟁이 불붙어 요금 할인은 물론, 다양한 부가 서비스 혜택이 확대될 전망이다. 물론 이 같은 경쟁은 이제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통신시장의 경쟁 활성화가 이용자 이익 증진과 서비스 고도화를 가져오고, 이것이 다시 IT 산업의 재도약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석호익 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 hoicksuk@kisd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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