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절필 끝 단편 발표한 송기원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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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10년 가까이 단 한편의 소설도 쓰지 못한 채 거의 절필상태에서 지내다 가까스로 다시 시작할 작정을 하게된 것은 바로 아름다움 때문이다.
모르기는 해도 쉰 가까운 나이에 아름다움 운운하는 삶이란 결코 평탄하지 않을 터이다. 그렇다. 나에게 있어서 자신의 삶이란 평탄하기는커녕 고작해야 자기혐오의 대상이었을 뿐이다….』
74년 중앙일보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각각 소설·시가 동시에 당선돼 문단에 나온 송기원씨(46)가 10년만에 소설활동을 재개했다. 『창작과 비평』봄호에 발표한 단편 「아름다운 얼굴」에서 송씨는 자신을 정리하려는 양 자신의 지나온 삶을 담담하게, 혹은 거칠게 뒤돌아보고 있다.
남도 한 읍 장터에서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며 잡초처럼, 그러나 한줄기 구김살 없이 낙천적으로 자라던 어린 시절, 장돌뱅이 사생아 출신에 지극히 자기혐오에 빠지던 사춘기 시절, 그 개차반 인생이 훌륭한 작품이 될 수 있다며 뛰어든 문학 청년시절, 그리고 민주화운동과 출판운동 등 송씨의 삶이 고백 조로, 혹은 소설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러면서 지독한 자기혐오 없이는 아름다움도 추구할 수 없다며 아름다움을 향한 문학으로 나아가고 있다.
『80년대는 문학에 너무 큰짐을 지웠습니다. 그 시대적 부채감 때문에 문학 자체가 사경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시대상황을 나 몰라라 할 수도 없었고, 또 너무 깊이 간여하다보면 문학 자체가 죽어버리고, 그 딜레마의 80년대를 문학은 지나쳐왔습니다. 시대상황과 문학성의 적당한 거리유지, 그것을 깨닫는데 10년이 걸렸습니다.』
80년 봄을 송씨는 서울역광장에서 맞았고 몇 년간 『실천문학』을 이끌며 문학·출판을 통한 민주화운동도 벌였다.
『살다보니 어쩔 수 없이 민주화대열에 끼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치도, 이념도 모르면서 끼어 들어 피에로 같은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로선 민주화운동이 내게 도덕이고 규범이었으므로 그것을 필연적으로 맞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제 민주화운동, 그 내 삶의 필연성을 보내고 아름다운 문학을 맞겠습니다.』
이제 문학을 찾겠다는 그의 자세를 스스로 작품 속에서 서슴없이 「반동」이라 부른다. 40대를 넘어서면서 자신도 모르게 보수화 된 것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건강한 보수주의에는 모든 것을 껴안을 수 있는 넉넉함이 있다는 게 80년대를 온몸으로 살아낸 송씨의 설명이다.
『80년대는 운동을 위해 너무 많은 것을 배제해버렸습니다. 더불어 함께 사는 그 모든 이들, 도둑놈·포스트모더니스트·경찰·탐미주의자 등등도 다 민중인데 사회개혁 주체로서의 민중 운운하며 민중을 너무 협소화 시켜 버렸습니다. 이제 진짜 큰 민중을 되찾아야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버렸던 그 모든 것을 민중 속에 다시 집어넣어야 합니다.』
송씨는 앞으로 자기가 살아오면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소설로 쓰겠다고 한다. 이 작업의 서두로 발표한 작품이 「아름다운 얼굴」이다.
『나라는 나는 내가 아니고 내가 만났던 사람들의 총체』라는 송씨의 더불어 살 줄 아는 진짜 큰 민중소설이 어떻게 피어날지 주목된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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